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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진료실 풍경] 청진기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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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청진기가 눈에 밟힌다. 집도 없어 가운 속 주머니를 제 집 삼았지만, 비좁고 가구조차 없다. 게다가 쉴 시간도 잠시뿐, 이리저리 바닥을 뒹굴거나 땀내 나는 목덜미 위에서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할 때가 더 많다. 가진 게 없으면 태(態)라도 나야 할 텐데 몰골은 아주 기형이다.

투박한 머리와 편평한 귀가 전부다. 걸친 옷도 꾸밈없이 사철 그대로다. 검은 연회복을 갖춰 입었으니 다행이지만 딱히 파티에 참석할 일도 없어 그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청진기에 삶이 묻어나고 위로를 주며, 스승의 모습까지 보인다면 30년을 함께 하기엔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다.

그가 들려주는 소리에는 삶이 묻어있다. 진폐 환자의 거친 숨소리엔 힘든 막장의 인생이 보인다. 끝없는 어둠 속, 자욱이 피어오른 먼지가 폐(肺)에 켜켜이 쌓이면 힘든 생(生)의 깊이만큼 숨소리도 거칠어진다. 청진기는 숨소리에 숨은 의미를 보라 한다. 환자가 걸어온 삶을 이해하고, 위로해 주라고 말한다.

그는 오래전 위로를 기억나게 해 줬다. 이식 수술 때였다. 뇌사에 빠진 아이는 모든 걸 나눠주고 떠났다. 하지만 자식을 보낼 수 없었던 부모는 빈 침대만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눈물이 내 가슴을 적셨다. 두 분의 손을 잡고 환자 앞에 섰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이젠 제 차례예요.”

청진기를 부모의 귀에 꽂자, 이식받은 환자의 심장 소리가 사랑하는 아들의 마음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그들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다시 삶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청진기의 기형적인 모습에도 가르침이 있다. 귀가 큰 건 제대로 들으라는 뜻이다. 듣지 않고 어찌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작은 신음까지 들어야 병을 치료할 수 있으니, 귀가 큰 것이요 제소리를 줄여야 잘 듣게 되니, 입이 없는 것이다. 가히 스승의 풍모를 지녔다고 할만하다.

그는 또한 생사의 자리에도 함께한다. 빠르고 역동적인 탄생의 심음(心音)에서 느리고 장엄한 죽음의 심음까지 청진기는 가장 소중하고 엄숙한 자리에 초대된다. 생의 시작과 끝을 알려주니, 얼마나 귀한가. 그럼에도 그의 수수하고 소박한 삶은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환자에게 다가가라는 또 다른 가르침을 준다. 항상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것 또한 찾아온 환자를 귀하게 대하라는 뜻일 것이다.

오랜 시간 벗으로 또 스승으로 함께 해온 청진기, 오늘도 그는 그렇게 꾸밈과 사치를 거부한 채, 오로지 자신과 소통할 누군가를 기다리며 어두워진 진료실을 지키고 있다.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 원장

[박관석 보령신제일병원장, 내과전문의 (opinion@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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