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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일본 국민들이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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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플랫폼 전문가 칼럼] 강철구 교수의 '일본 시각'

[편집자주] 비극적인 과거사가 있고, 갈등요인이 상존하는 인접국 일본에 대해 우리는 항상 경쟁의식이 강했다. 얼마 전부턴 경제력이 앞선다는 우월의식도 일부 생겼다. 그러나 이제 한일관계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 관계개선에 따른 실익도 잘 챙길 수 있다. 국내 최고의 일본 전문가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가 머니투데이 지식·학습 콘텐츠 브랜드 키플랫폼(K.E.Y. PLATFORM)을 통해 일본의 시시각각(時時刻刻)을 정밀한 관찰의 시각(視角)으로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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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국가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

필자가 대학 다니던 1980년대에 유행했던 말이다. 당시 일본이 선진국인 것을 시샘하면서 한편으로는 위로를 삼을만한 이야기를 찾다 보니 나온 이야기였다. 그래서 굳이 '일본 사람들은 토끼장 같은 작은 집에 살면서 반찬은 남기지 않을 정도로 절약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며 위로를 삼기도 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40여년이 지난 지금, 이런 이야기가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 최근 일본의 '유나선생(ゆな先生)'이라는 필명의 일본 네티즌이 'X'(옛 트위터)에 '지금의 일본인들은 오렌지주스조차 사 마시지 못할 정도가 되어 감귤 혼합주스를 마시게 되었다', '일본 여성들이 해외 매춘을 하면서 입국 거부를 당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성매매로 입건되었다' 라는 탄식의 글을 올렸는데, 불과 1주일 만에 이 글이 2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인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일본 국민들은 실제로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의 가난에 빠져 있는가? 이는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질문도 아니다. 왜냐면 일본 국민들의 가난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가난이라기보다는 국가의 경제규모에 비해 가난하다는 의미여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가난한가를 몇 가지 데이터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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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엔화 가치가 장중 달러당 34년 만에 160엔대를 넘어선 2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와 엔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4.4.2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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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일본인들의 평균임금은 OECD 회원국 가운데 하위권에 속하는 33위이다. 한국이 32위이니 한국도 높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보다는 순위가 뒤에 있다. 그러나 한국의 순위가 하위권이라고 해서 일본이나 한국이나 그게 그거네 하고 넘길 수가 없는 것이, 일본의 명목GDP는 세계 3위권인데 평균임금은 33위이라는 점에서 국가는 부한데 국민은 가난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최저임금도 한국이 평균적으로 높다. 한국의 최저임금은 전국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반면 일본의 최저임금은 지자체마다 지역 상황에 맞게, 그리고 산업별로 차등하여 결정하는 구조여서 한국과 단순 비교는 어렵긴 하다. 일본의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곳은 도쿄로 1113엔, 오사카는 1064엔이다. 그렇지만 오키나와현은 896엔이고 아오모리나 이와테현 등 동북부 지방은 893엔 수준이다. 올해 일본의 평균 최저임금은 간신히 1000엔을 넘기면서 원화로 환산하면 8700원 정도이지만, 한국은 2023년 9620원, 올해 2024년은 9860원으로 일본보다 약 1000원 정도 높다.

최저임금은 노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는 수준으로 결정되는 균형 임금이 아니라 정부가 결정하는 정책으로, 이론적으로는 최저임금을 인상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들은 실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일본의 최저임금이 낮다는 것은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근로자들을 기업이 품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노동생산성이 낮다는 것은 같은 시간을 투자했을 때 부가가치 창출이 어렵다는 의미인데,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2022년 OECD 38개 국에서 30위에 머물러 있고, 또 G7 국가에서는 최하위권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노동생산성에 대해서는 자유로울 수 없지만 일본은 국가 GDP에 비해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셋째, 2023년 일본의 엥겔지수는 27.3%로 40여년 만에 최고를 기록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대략 15% 전후이다. 엥겔지수는 일정 기간 동안 가계 전체 지출액 중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로 가계의 생활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인데, 전체 지출에서 식비 비중이 높다는 건 그만큼 가계 소비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엥겔지수가 25% 이하이면 소득 최상위, 25~30%이면 상위라고 보는데, 수치상으로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는 소득 최상위에 해당하고 일본이 그 밑이다. 물론 엥겔지수를 낮추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소득수준을 높이거나 반대로 식료품 가격을 낮추면 된다. 그런데 일본은 현재 임금상승이 대기업 중심이어서 전반적으로 소득수준이 올라간 것이라고는 할 수 없고, 수입가격이 상승하다 보니 식료품 가격을 낮추는 것도 쉽지 않아 당분간 엥겔지수를 낮추기는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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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코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 15일(현지시간) 일본 도치기현 닛코시의 온천 휴양지 기누가와 온천 지역에 버블 경제 이후 버려진 호텔과 온천 여관들이 방치되어 있다. 2024.03.15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닛코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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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국하고만 비교해도 몇 가지 수치에서 일본 국민들이 우리보다는 가난하다는 게 증명이 되는데 이 모든 원인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을까? 이는 크게 슈퍼엔저와 낮은 임금상승에 기인한다. 우선 슈퍼엔저로 인해 수입 물가가 상승하면 소비자물가가 덩달아 올라 일본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고 있다. 또 다른 원인으로, 임금상승이 대기업 위주로 진행되고 평균적인 임금상승이 정체되어 있다 보니 소비여력이 줄고 저축이 어렵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일본은 왜 지난 30여년 간 임금상승이 거의 없었지? 그건 일본의 노조가 근로자들의 임금상승을 요구하기 보다는 고용 유지를 우선해 왔기 때문이다. 아직도 일본의 실업률은 2.5% 전후로 완전고용에 가까울 만큼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렇게 고용이 보장되다 보니 굳이 더 열심히 일해서 더 좋은 기업으로 이직할 유인(誘因)도 없고, 그래서 생산성도 떨어지고, 그러면 기업은 생산성이 떨어지는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올려줄 필요가 없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일본은 어쩌면 지금 기로에 놓였을지도 모른다. 산업 전반의 구조개혁이 필요하고 고용관행도 변해야 하는데 이에는 고통스런 구조조정과 노동시장 유연화가 따라야 한다. 여기에 슈퍼엔저도 막아야 하고 금리도 인상해야 한다. 이런 숙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 국민들의 가난은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강철구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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