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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당국 개입도 안 통하는 '슈퍼엔저'…일본 경제에 부메랑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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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19일(현지시간) 일본 수도 도쿄의 상점가를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다./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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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하락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환율 방어를 위해 일본 당국이 돈을 쏟아부었지만 금리 격차에 따른 시장 흐름을 막긴 역부족이란 평가다. 과도한 엔저가 이어지다 보니 일본 증시 상승과 디플레이션 탈출을 견인하던 엔저가 되레 경제에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란 우려도 커진다.

21일 오전 엔·달러 환율은 7거래일 연속 상승하며 159엔을 돌파했다. 엔이 달러를 상대로 가치가 내렸단 의미다. 환율이 다시 160엔을 위협하자 일본 당국은 구두 개입에 나섰다. 간다 마사토 일본 재무성 재무관은 21일 필요시 정부가 적절한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당국의 개입으론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단 시각이 만연하다. 올해 이뤄진 당국의 엔화 매수는 일시적으로 환율을 낮췄을 뿐 효과가 지속되지 않았다. 일본 당국은 4월29일 엔·달러 환율이 160엔을 돌파하자 엔 매수를 단행했다. 5월2일에도 시장에 개입했다. 시장 관계자들은 개입 규모가 약 10조엔(약 8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하지만 환율이 안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엔화는 올해에만 달러 대비 약 11% 하락해 주요 10개 통화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을 기록 중이다.

바클레이즈는 20일 투자노트에서 "미·일 금리차가 일정 수준을 넘어 유지되는 한 금리 차이를 이용해 이익을 노리는 캐리 트레이드가 줄어들지 않을 수 있다"며 올해 연말에도 엔·달러가 160엔대 수준에서 거래될 것으로 내다봤다. 금리 격차를 좁히지 않는 한 엔저 추세를 되돌리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조만간 금리 격차가 줄어들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제로 금리인 일본은행은 통화정책 정상화로 방향을 잡았지만 신중하고 점진적이다. 일본은행은 이달 금융정책결정 회의에서 국채 매입 규모를 축소하겠다면서도 구체적인 계획 발표는 다음 회의로 미뤘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꺾이지 않으면서 고금리가 장기화할 태세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후 점도표를 통해 올해 금리 인하 횟수 전망치를 종전 3회에서 1회로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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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달러 환율 6개월 추이/사진=인베스팅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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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엔저는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일본을 깊은 불황과 디플레이션에서 건져내기 위한 '아베노믹스'의 중심에도 막대한 유동성 공급을 통한 엔화 약세 유도가 있었다. 엔저가 일본 수출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 기업 순익을 뒷받침하고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저물가 해소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여행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엔저 현상이 장기화하고 추세가 뒤집히기 어려워 보이면서 일본 경제 전반에 부메랑으로 작용할 조짐이다. 일본 재계가 원자재 가격 상승과 소비 심리 위축을 이유로 지나친 엔저에 대한 불안감을 공개적으로 밝힐 정도다. 유니클로 모회사인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지난 4월 "엔화의 가파른 하락세는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며 일본에 좋을 수 없다"면서 "만약 엔화 하락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약간 정신이 이상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수입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빠르게 오르자 한 푼이라도 지출을 줄일 방법을 찾고 있다. 도쿄 긴자에서 300엔 미만 도시락을 파는 할인 식료품점을 찾은 60대 여성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긴자에 오면 늘 여길 들른다"면서 "생활비가 너무 커져서 뭐라도 좀 싸게 사려고 한다. 여긴 다른 데보다 30% 정도 싸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비 둔화로 경기가 침체되면 일본은행이 금리 인상을 통한 엔화 부양에 나서기 어렵단 점이다. 고령화로 인해 소득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연금 수급자들의 소비 비중이 39%에 달한다는 점은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노무라리서치의 우치 다카히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일본은 좀 위기 상황"이라며 "사람들은 엔이 계속 내리고 가격은 더 오를 것으로 생각하는데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개인 소비는 급격히 줄어들고, 엔저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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