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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거야, 시작부터 탄핵·특검 8건…"입법 폭주 21대보다 심하다" [22대 국회개원 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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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 개원 한 달인 지난 30일 현재 국회 본회의에 계류 중인 법안은 5건이다. 21대 국회에선 같은 기간 코로나 19 대응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등 두 건만 상임위를 통과했다. 일 처리 속도가 빨라 보일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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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범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4차 전체회의에서 정청래 위원장에게 의사일정 진행 관련 항의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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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2대 국회 5건의 법안은 내용이 새롭지 않다. 공영방송의 이사회 규정을 바꾸는 방송3법(방송법ㆍ방송문화진흥회법ㆍ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과 방송통신위원회 의결 요건을 강화하는 방통위법 개정안, 채 상병 특검법안 5개다. 방통위법 개정안을 빼면 21대 국회 막판, 여야의 대립 속에 ‘거야(巨野) 강행처리→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거쳐 폐기됐던 것들이다. 22대 국회와 시작점이 21대 국회의 막바지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 정치권에서 “최악이라던 21대보다 더 나쁜 상황이 예고되는 장면이다. 협상과 조율이라는 국회의 기능이 사라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22대 국회에서 단연 두드러진 것은 170석으로 다시 1당이 된 민주당의 ‘힘의 정치’다. 일방통행식 법안처리를 주저하지 않을뿐더러 그 속도가 확 빨라졌다. 민주당은 지난달 13일 발의한 방송3법과 방통위법 개정안은 발의 5일만인 지난달 18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소관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했다. 그 일주일만인 지난달 25일엔 법사위 문턱도 넘었다. 21대 국회에선 이들 법안을 처리하기까지 발의(2022년 4월 27일)부터 상임위 통과(2022년 12월 2일)까지만 220일, 본회의에 부의(직회부)하기까지는 329일이 걸렸다.

속도전은 채상병 특검법도 마찬가지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개원 직후 ‘당론 1호’로 재발의한 채상병 특검법도 발의 22일 만에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회부됐다. 21대 국회 당시엔 발의(2023년 9월 7일) 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거쳐 본회의에 오르기까지 210일이 걸렸다.

두 상임위를 이끄는 건 민주당 안에서도 대표적인 강경파로 꼽히는 정청래 법사위원장과 최민희 과방위원장이다. 5개 법안 모두 두 상임위 소관이거나, 법사위를 거쳐야 한다. 22대 국회 초반 한 달 정국을 장악하다시피 한 법안이 두 사람에 의해 핸들링되면서 국회 안팎에선 “한 달 동안 보이는 건 정청래와 최민희밖에 안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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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야당 의원들이 28일 오전 경기 과천정부청사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민원실에서 '방통위 2인 체제의 위법성'을 강조하며 김홍일 위원장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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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활약은 거침없다. 사실상 사문화했던 ‘입법 청문회’ 제도를 꺼내 들어 상임위를 대여(對與) 공세의 장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입법청문회를 열면 증인ㆍ감정인ㆍ참고인을 채택해 증언과 진술을 들을 수 있는데, 채택된 증인은 국회 증언ㆍ감정법상 출석 의무를 지켜야 한다. 어길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2000년 도입된 이래 4차례 열린 게 전부였지만, 22대 국회에선 한 달 만에 법사위(6월 21일 채상병 특검법)ㆍ과방위(6월 21일 방통위설치법)ㆍ국토위(6월 25일 전세사기특별법) 등 3곳에서 열렸다.

강짜로 밀어붙이다 보니 설화에 휩싸이기도 일쑤다. 정 위원장은 지난달 21일 열린 법사위의 채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에서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 등 일부 증인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으며 ‘10분 퇴장’ 명령을 내려 인격 모독이란 비판을 샀다. 정 위원장은 입법 청문회를 “갑질, 무법지대”라고 비판한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향해 “추경호, 초딩처럼 이르지 말고 용기를 내서 나에게 직접 말하라”고 응수하기도 했다. 민주당 출신인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런 정 위원장에 대해 “태도가 리더십이다. 좀 더 겸손해야 한다”(6월 24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고 질책했다.

극단 대립의 상징인 탄핵과 특검도 자주 언급되고 시도되는 중이다. 민주당은 지난달 27일 당론으로 기습 발의한 김홍일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을 이달 4일까지인 6월 임시국회 내에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당 정치검찰 사건조작 특별대책단을 중심으로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관련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 추진 의사도 여러 차례 밝혀왔다. 야권은 특검법도 쏟아내는 중이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 의혹 관련 특검 2건(이성윤, 김용민 각각 대표발의), 한동훈 특검(박은정 등 조국혁신당), 대북송금 특검(이성윤), 채상병 특검(박찬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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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유재근 전 국방부 법무비서관 등이 21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채상병특검법)에 대한 입법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인선서를 하는 동안 선서를 거부한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자리에 앉아 있다. 전민규 기자. 202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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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의 법사위ㆍ과방위ㆍ운영위 등 주요 상임위 독식에 국회를 보이콧했다 최근 “국회에서 싸워야 한다”는 명분으로 등원한 국민의힘은 별 뾰족한 대응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협상과 타협이라는 정치의 기술이 실종된 마당에 숫자의 힘에 맞설 방안이 없다. 당정협의회 등을 통해 민생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전당대회를 앞두고 내부 분열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전문가들은 “국회 스스로 정치와 국회를 부정하고 있다”며 우려한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국회법을 따른다면서 숙려 기간도 거치지 않고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운영한다”며 “결국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과 냉소가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국가 이익을 위해 협상하고 양보해야 할 상임위가 심각하게 무너져 입법부와 의회정치의 정상화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며 “양당 지도부 간의 협상이나 조율이 사라지고, 극한 대립과 정치 피로감만 안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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