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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단순직에 명문대 석사 줄지원…“신입 안뽑으니 뭐라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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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채용 사라진 판교
경기불황에 AI 확산 겹쳐
상시채용 비중 3년새 2배로
경력 없으면 취업문 막혀
단기성과 급급한 IT 기업들
‘혁신 DNA’ 사라질 우려


매일경제

‘이직의 다리’로 불리는 판교역 인근 공중 연결통로. 2024.6.30 [한주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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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졸업·명문대 석사 과정 이수·해외 IT 기업 인턴십 수료...

한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인공지능(AI) 기반 서비스 개발을 맡고 있는 B씨는 얼마 전 ‘데이터 라벨링’ 업무를 할 임시 계약직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지원자들이 낸 이력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AI 학습 데이터를 쌓기 위해 원천 데이터에 소위 ‘라벨’(값)을 붙이는 단순 업무 작업임에도 ‘고스펙’ 지원자들의 채용 문의가 주류를 이뤄서다.

B씨는 “일반인도 쉽게 할 수 있는 부업 성격이 강한 직무인데, ‘신입으로 관련 경험이 없어도 지원 가능하다’라는 조건 때문인지 생각보다 많은 지원이 몰렸다”고 말했다.

신입으로 판교 등 IT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최근 정보통신기술(ICT) 업종 채용 시장이 ‘경력’을 최우선시 하는 문화와 더불어 접수 마감 기한이 없는 ‘상시 채용’ 기조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30일 본지가 캐치(CATCH)에 의뢰해 이 사이트에 올라온 기업의 채용 형태를 분석한 결과, IT·통신 업종 내 대기업 및 중견·중소기업 등의 전체 공고 수는 연도별 상반기 기준 2021년 4875건, 2022년 7482건에서 2023년 9274건, 올해 1만1265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채용 규모를 자세히 살펴보면, 접수 기한이 명시되지 않은 상시 채용 기조가 해를 거듭할수록 심화되고 있다.

IT·통신 업종의 상시 채용 비중은 작년 상반기 49.6%에서 그 해 하반기 69.0%로 확대되더니 올해는 75.4%로 치솟았다. 2021년 상반기 40.6%에 불과했던 것과 견줘보면 그 비중이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상대적으로 마감 기한이 있는 공채 건수의 비중은 2021년 상반기 59.4%에서 올 상반기 24.6%로 꾸준히 감소해 왔다.

캐치 관계자는 “고경력자 중심으로 적재 적소에 맞는 인력만 선발하겠다는 게 상시 채용의 목적”이라면서 “마감을 두고 공채를 빠르게 채용하기 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원하는 인재가 채용이 될 때까지 모집 공고를 무기한 열여두는 분위기가 IT업계에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채용 공고 수 자체는 해마다 늘었지만,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가 부쩍 빈번해 진 것이 상시 채용의 딜레마인 셈이다.

신입 채용이 줄면서 기업에서 쌓은 1~2년의 경력을 포기하고 신입으로 다시 들어가는 ‘중고 신입’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대기업 IT 계열사 재직 중인 2년차 개발자 C씨는 중고 신입으로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C씨는 “신입 채용 공고가 간혹 있긴 하지만, 같은 공고여도 채용 인원이 줄고 있는 느낌”이라며 “신입 채용도 번번이 떨어져서 경력을 더 채워 경력 이직을 도전하는 것이 더 나을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정규직 신입 자리 대신 채용 전제형 인턴을 선호하는 테크 기업들의 성향도 두드러지고 있다.

한 IT 기업 인사 담당자는 “인턴 채용의 주된 목적이 소위 우리와 합이 맞는지, 그리고 실제 역량이 있는 사람인지를 면밀히 평가하기 위함으로, 보수적인 채용 분위기 속에선 신입 공채보다 인턴을 더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러한 채용 기조가 고착화될 경우 조직 내 결속력이 약해지고 혁신성까지 밀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 대형 IT기업의 인사 담당자는 “경력 채용은 투입되는 인건비만큼 바로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신입은 최소 1년간 온보딩(On-Boarding·조직 문화를 이해하고 직무에 적응하도록 돕는 과정)을 위한 교육 비용 등이 들어가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인재 육성을 위한 투자 관점의 지출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당장의 기업 생산성을 위해 상시 채용 중심으로 움직이고, 신입을 급격히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끈끈한 기업 문화’와 ‘혁신 DNA’가 결여되는 부작용이 동반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우려했다.

일례로 조직 인력 구성에 있어 고연차 리더급으로만 채워진 팀은 업무량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효율성이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저연차 주니어부터 직급·직책별로 고른 인력이 분포된 팀에 비해 다양한 사고가 발휘되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터넷 비즈니스의 기본인 창의적인 서비스가 중요한 IT업종 특성상 매우 유연한 조직 관리와 균형 잡힌 인력 구성은 다른 어느 업종보다도 필수적인 요건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고민서 정호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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