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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조국 알바니아보다 유명했던 작가 카다레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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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19년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서울을 방문한 이스마일 카다레. 사진 토지문화재단 제공


스물일곱 살 발표한 첫 소설로 “그의 조국 알바니아보다 더 유명하다”는 찬사를 받았던 알바니아 출신 세계적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별세했다.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자였다. 향년 88.



아에프페(AFP), 에이피(AP) 등 외신은 이스마일 카다레가 심장마비로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에 있는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1일 보도했다.



1936년 그리스 국경에 닿은 알바니아 남부 지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난 카다레는 시집 ‘서정시’을 출간하며 시인으로 먼저 데뷔했다. 1953년 고등학생 때다. 이탈리아, 독일이 조국을 점령했던 소년 시절 “발칸의 외딴 구석에서, 글을 잘 쓸 줄도 모르면서” 세익스피어의 작품을 필사하곤 했다. 티라나대학에서 언어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모스크바의 고리키문학연구소에서도 수학했다.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하며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70년 프랑스 현지 출간이 한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알바니아인들이 갈 수 있는 도시는 모스크바, 프라하, 부다페스트, 상하이 등지에 불과했다.



공산주의 조국의 부조리를 풍자와 유머로 고발한 작품은 곧 국가로부터 탄압받는 계기가 된다. 조짐은 이미 있었다. 카다레는 고교 시절 첫 시집 원고료로 친구들과 티라나에서 가장 유명한 카페에서 코냑을 마셨다가 퇴폐적이고 불순하다며 정치적 소동에 휘말린 적 있었다. 공교롭게 첫 시집에도 파리에 관한 시가 있다. 티라나의 ‘반대말’이 파리였던 셈이다. 더는 책을 출간하기 어렵자 1990년 프랑스로 망명하고, 매일 아침 파리 중심가의 카페 로스탕에서 커피 마시며 글을 썼다. 그의 첫 자전적 에세이 제목이 ‘카페 로스탕에서 아침을’(2014)이다.



지난 70여년 동안 카다레는 소설, 시, 에세이, 희곡 등 다양한 장르에서 작품을 발표해왔다. 주요 작품으로 2차대전 끝 고향에서 보낸 유년기를 되살린 자전소설 ‘돌의 연대기’, 조국의 옛 관습법에 따른 명예살인을 다룬 ‘부서진 사월’을 포함, ‘꿈의 궁전’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등이 꼽힌다. 신화, 민담 등에도 바탕한 ‘해학적 비극’의 문풍으로, 외세에 시달리거나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농락하던 알바니아 근현대사를 복원해 세계에 알리는 데 주력했다. 그는 2019년 방한해 “제가 태어난 아주 작은 마을은 또한 독재가 엔베르 호자의 고향이기도 하다. 심지어는 불행하게도 그와 나는 같은 골목 출신이다. 이름이 ‘미치광이들의 골목’이다. 알다시피 독재자들은 작가를 좋아하지 않고, 유명한 작가는 더 싫어한다”고 말한 바 있다.



1992년 프랑스 치노델두카 국제상, 2005년 영국의 1회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2016년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최고훈장을 받았다. 2019년엔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을 찾았다. 그해 앞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극작가 페터 한트케가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밀로셰비치의 소수민족 학살을 옹호한 것을 정면 비판했다. 당시 “예술은 족쇄 같은 진리를 버리고 창조라는 무거운 짐을 떠맡았다”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올해 황석영 작가와 나란히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1차 후보에 오른 바 있다. 그가 수상했다면 부커상 사상 최초로 인터내셔널 부문 2관왕 기록했겠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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