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4 (목)

[사설] ‘개딸’ 문자 폭탄에 고통 호소 이 전 대표, 역지사지하길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조선일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가 SNS에 “전화·문자 그만 좀. 시도 때도 없는 문자·전화는 응원·격려가 아니라 고통을 주는 것”이라며 “아무래도 수십 년 써 온 전화번호를 바꿔야 할 모양”이라고 썼다. 이어 “진심으로 대표님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을 텐데”라고 쓴 지지자의 글을 리트윗(재게시)했다. 이 전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이 최근 당대표 연임을 위해 대표직을 잠시 내려놓은 이 전 대표에게 대량으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전 대표가 고통을 호소할 정도니 얼마나 극성스러운지 짐작된다.

그동안 개딸은 이 전 대표와 조금이라도 의견이 다른 정치인들을 ‘수박’ ‘×파리’라 비하하며 문자 폭탄을 퍼부었다. 지역구 행사에 찾아가 욕설을 퍼붓고, 사무실 앞에서 트럭 시위를 하고, 집까지 쫓아가 스토킹했다. 작년 이 전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짐작되는 의원들에 대한 색출 작업을 주도한 것도 이들이다. ‘반동’ ‘반란군’ 운운하며 “어떤 표결을 했는지 밝히라”고 다그쳤다. 표적이 된 의원들은 4·10 총선에서 대부분 공천 탈락했다. 친이재명계 의원들에겐 한없이 너그러웠다. 국회 회의 중 코인 거래를 한 의원에게는 “힘내라”고 하고 ‘돈 봉투’ 의혹 전 대표에게는 “파이팅”을 외쳤다.

지금 민주당은 이런 악성 팬덤에 완전히 휘둘리고 있다. 얼마 전엔 국회의원만 참여하던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 권리 당원 투표를 20% 반영하기로 했다. 최근 경선에서 개딸 지지를 받던 추미애 후보가 탈락한 뒤 벌어진 일이다. 국회의장 선출에까지 개딸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은 당원의 참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다. 민주당도 이를 알 테지만, 개딸 1만5000명 이상이 탈당을 신청하며 추미애 아닌 다른 사람을 찍은 의원들을 색출하겠다고 나서자 두 손을 들었다. 당 원로인 정대철 헌정회장은 “개딸은 집단 민주주의가 아니고, 집단 민주주의의 폐해”라고 했다.

당 내부에서 “질식할 지경” “당내 민주주의가 와해됐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나왔지만 그동안 이 전 대표는 개딸을 말리는 시늉만 해왔다. 오히려 개딸에 대해 “세계사적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며 “정말 큰 힘이 난다”고 했다. 체포동의안 반란표 색출 때도 ‘자제를 요청할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노동 환경 개선에 더 관심을 가져 달라”고 동문서답했다. 자제 요청이 아니라 부추긴 것이다. 그런 이 대표가 고통을 호소했다니 다른 사람들이 당한 것도 역지사지해야 한다.

[조선일보]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