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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4 (목)

알바니아의 비극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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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알바니아의 유명 휴양지 베라트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탈리아 관광객 4명이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돈을 안 내고 사라지는 ‘먹튀’ 사건이 발생했다. 식당 주인이 입은 손해는 80유로(약 12만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일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알바니아 국민들 사이에 공분이 일었다. 마침 알바니아는 1939년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세력이 이끌던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아 그 보호국이 되며 독립을 잃은 쓰라린 경험이 있다. 반(反)이탈리아 감정의 고조를 걱정한 것일까. 먹튀 사건이 있고 나서 얼마 뒤 알바니아를 방문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현지 대사에게 명령해 대사관 예산으로 떼인 이탈리아인들의 식대 80유로를 갚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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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가 낳은 세계적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1936∼2024).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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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는 지리적으로 유럽에 속한다. 2009년 유럽과 북미 등 서방을 대표하는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가입했다. 하지만 정작 간절히 원하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지위는 아직 얻지 못하고 있다. 2014년 EU 가입 후보국 명단에 이름을 올린 뒤 10년간 ‘후보’ 꼬리표를 달고 다닌다. 2022년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6800달러로 EU 회원국 평균에 크게 못 미치는 등 열악한 경제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인구의 60%가량이 이슬람교를 믿는 등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사뭇 다른 문화적 배경도 EU가 선뜻 알바니아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알바니아의 역사는 기구하기 그지없다. 지금의 튀르키예가 과거 막강한 오스만 제국으로 발칸반도 일대에서 위세를 떨치던 시절 알바니아는 제국의 일부였다. 1910년대 들어 오스만 제국이 쇠퇴하며 독립했으나 곧 주변 강대국들이 눈독을 들이는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위에 소개한 것처럼 이탈리아의 속국이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가 패망한 뒤로는 나치 독일의 점령 통치를 받았다. 나치 독일의 항복 이후에는 소련(현 러시아) 영향권에 편입돼 폐쇄적인 공산주의 독재 정권이 들어섰다. 1989년부터 동독,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을 덮친 민주화 물결도 알바니아만큼은 피해 갔다. 알바니아는 1998년에야 공산주의를 완전히 폐기하고 의원내각제 민주국가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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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9년 10월 제9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을 위해 방한한 이스마일 카다레가 국내 문학 담당 기자들과의 간담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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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가 낳은 세계적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1일 8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90년 당시 공산주의 정권의 탄압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던 고인은 알바니아의 민주화 이후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죽은 군대의 장군’ ‘부서진 사월’ ‘돌의 연대기’ 등 소설들은 1930∼1940년대 파시스트 이탈리아와 나치 독일에 점령당한 알바니아의 비극적 현대사를 국제사회에 고발해 극찬을 받았다. 5년 전인 2019년 제9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최근 몇 년 동안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해마다 거론되었는데 그만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유럽에 있지만 정작 유럽인들도 잘 모르는 ‘변방의 나라’ 알바니아를 전 세계에 알릴 기회가 영영 사라진 듯해 아쉽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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