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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최대주주에 감세 보따리 안긴 ‘밸류업’…부의 대물림만 늘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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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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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3일 공개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세제 지원 방안은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 폐지와 밸류업 기업에 대한 상속세·법인세 감면, 밸류업 기업의 주주 소득세 감면으로 구성됐다. 상속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기업가치를 오히려 낮추는 시장 관행에 제동을 걸고, 배당 등 주주 환원은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시키는 등 상법 개정과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방안은 대책에 담기지 않았다. 감세로 인한 밸류업 정책 효과가 불분명한 가운데 부의 대물림만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상속세법 개정을 통해 폐지하겠다고 밝힌 상속세 최대주주 할증 제도는 최대주주 보유 주식과 출자 지분엔 일반 주주와 달리 ‘경영권 프리미엄’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 1993년 도입한 제도다. 부의 대물림을 막기 위해 상속세를 산정하는 기준인 상속재산에 경영권 프리미엄도 포함시킨다는 취지다. 재계의 오랜 반발에 정부는 2019년 법을 개정해 2020년부터 중소기업 최대주주를 상속세 할증 대상에서 제외하고, 대기업 최대주주의 할증률도 20~30%에서 20%로 단일화했다. 4년 전에 제도가 한차례 완화됐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재계에선 할증 평가를 없애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되자, 결국 정부가 밸류업을 구실로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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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한국은 재벌·대기업 총수의 자녀가 주식을 단순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경영권 자체를 승계받는 관행이 많기 때문에 현행과 같은 할증 평가 제도가 존재하는 것”이라며 “이런 한국의 특수성이 사라지지 않았는데 할증 평가를 폐지하는 것은 경영권 승계 부담만 줄여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우 교수는 이어 “할증 평가가 사라져도 상속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주가를 일부러 내리는 행태가 계속될 수 있다”며 “할증 평가 폐지로 밸류업이 될 거라는 논리 역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2003년 헌법재판소도 최대주주 보유 주식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존재하며, 이에 따라 상속·증여 재산을 평가할 때 할증 평가를 하는 것이 조세평등주의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합헌 결정한 바 있다.



정부는 ‘밸류업’ 요건(2025∼2029년 기간 밸류업 공시를 이행하고 배당 등 주주 환원액 비율이 업종 평균 120% 이상)을 갖춘 기업에 한해 ‘가업상속공제한도’를 현행 최대 6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2배 늘려 적용하기로 했다. 매출액 5천억원 미만 중견기업에 적용되던 가업상속공제의 문턱을 낮춰, 재벌그룹(대기업집단)만 아니면 모두 적용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치기로 했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 환원액이 직전 3년 평균에 견줘 5% 이상 늘어난 기업을 대상으로는, 늘린 주주 환원액의 5%를 법인세에서 세액공제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밸류업 기업 주주라면 이자와 배당 등 금융소득이 연 2천만원을 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라도, 2천만원 초과분에 대해 현행 세율(최대 45%)이 아닌 25% 세율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분리과세’도 도입된다. 법인세, 소득세 특례 감면은 3년 한시로 시행하기로 했다.



이날 정부는 감세 카드는 여럿 꺼내놓았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돼온 잘못된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할 마땅한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특히 재계가 강력 반대하고 있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넓히는 상법 개정은 이날 대책에서 아예 빠졌다. 정부가 이날 세제 지원과 함께 제시한 지배구조 개선 방안은 올해 하반기 중 전자 주주총회 도입과 주총 기준일 효력기간 단축(3개월→2개월), 물적 분할 시 반대 주주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등으로 대주주 일가의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는 근본적인 지배구조 개선 방안과는 거리가 있다.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방안 등에 대해서는 공론화가 진행되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논의를 거쳐 정부 입장을 어느 시점에는 정하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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