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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7 (일)

의협서 거듭 손 내밀지만...'2020년 트라우마'에 의협 불신하는 전공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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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식 기자]
라포르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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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대한의사협회가 전공의 끌어안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분위기다. 의협이 원하는 것은 후순위로 밀고, 전공의들이 원하는 것에 최우선으로 집중하고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전공의들 사이에선 2020년 의정갈등 당시 의협이 전공의를 배제한 채 의정합의를 강행한 것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이 새겨져 있어서 의협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최근까지 의협이 제안한 각종 협의체에 불참하고 있는 상태다. 앞서 지난달 13일 의협은 대한의학회, 전국의대교수협의회, 전국의대 비상대책위원회 등과 '의대정원 증원 사태 대응방안 논의를 위한 연석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이날 의협 최안나 대변인은 회의가 끝난 후 "오늘 회의에서 전의교협과 전국의대 비대위 등은 의협을 중심으로 단일대오로 뭉칠 것을 확인했다"며 "모든 의료계의 뜻이 의협을 대화창구로 통일하고 하나로 움직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날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 박단 위원장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서 "임현택 회장은 이제는 말이 아니라 일을 해야 하지 않을지. 여전히 전공의와 학생만 앞세우고 있지 않나""며 "단일 대화 창구? 통일된 요구안? 임현택 회장과 합의한 적 없다. 범 의료계 대책 위원회? 안 간다"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박단 "임현택 회장, 최대집 전 회장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란다" >

전공의와 의대생이 대정부 투쟁 선두에 나선 상황에서 의협이 정부와의 유일한 대화창구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의협은 의대교수와 전공의를 중심으로 하는 새 논의구조를 만들었다.

의협은 지난 19일 대한의학회, 전의교협, 전국의대 비대위와 제5차 연석회의를 갖고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이하 올특위)를 출범키로 했다.

올특위 구성은 교수 대표, 전공의 대표, 시도의사회 대표 등 총 3인의 공동위원장 체제로 운영된다. 시도의사회에선 공동위원장 1인과 위원 2인이 참여한다. 의대생 대표도 위원 1인을 배정했다. 교수와 전공의는 각각 공동위원장 1인과 위원 3인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의협에선 임현택 회장이 참여하지 않고 위원과 간사로 2인이 참여한다.

하지만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0일 "현재 상황에서 범 의료계 협의체를 구성하더라도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표명했다"며 선을 그었다.

문제는 올특위는 모든 의견을 총 14인의 만장일치로 의결키로 했다는 부분이다. 현재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올특위에 참여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머지 위원들의 만장일치로는 '반쪽 올특위'라는 지적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이처럼 전공의들의 의협 비토(veto)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의협이 정책 방향을 '전공의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협 관계자는 지난 3일 라포르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의협이 선제적으로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다. 전공의들이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 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와의 대화창구가 올특위로 정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올특위를 만들 때 대정부 대화창구로 정하고 만들었다기보다는 내부적으로 집단행동 등을 요구하는 컨센서스를 만들 때 이 정도 구조는 돼야 전공의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취지가 있었다"라며 "중요한 것은 어떤 논의든 협의든 전공의들이 원치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게 일단 최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전협과 직접적으로 의견을 주고 받고 있진 않지만 여러 전공의들의 개별적 의견을 접하고 있고, 최근 사직 전공의들이 의협 집행부에 자문위원으로 합류하면서 전공의들의 목소리를 전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며 "전공의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고, 진정 원하는 것을 하면서 기다리면 전공의들도 의협의 진심을 알아주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임현택 회장의 대표성을 지적하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관련 기사: 의대생들 "의협 회장, 무능·독단과 막말로 의료계 이미지 실추시켜">

의협 관계자는 "최근 임현택 회장의 대표성을 운운하는 말들이 있는데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임현택 회장의 개인적 발언에 대해 의료계의 의견이 아니라고 성명을 낼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임 회장이 대표성이 없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라며 "회원 투표를 통해 선출이 된 회장에게 대표성이 없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대표성을 갖지 못한다는 말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그동안의 의협의 행보를 볼 때 전향적 회무이지만, 전공의들이 마음을 돌릴 수 있을 만큼의 진정성과 지속성을 관건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의료계 관계자는 "시도의사회에서 볼 때 임현택 집행부의 가장 큰 문제는 불통이다.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시도에는 그냥 던지는 식이다"라며 "전공의 역시 마찬가지다. 임 회장은 당선 직후 의료계가 전공의와 의대생을 전적으로 믿어주고 기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전공의나 의대생들과의 소통은 부족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관계를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협이 독단적 회무를 하지 않고 전공의들이 원하는 것을 제시할 때까지 준비하면서 기다리겠다는 것은 환영한다. 전공의들이 병원을, 의대생들이 학교를 나왔을 때부터 의협의 역할은 정해져 있었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은 아직까지 의협과 선배 의사들에 대한 신뢰를 갖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모 대학병원 전 전공의 대표 A씨는 라포르시안과의 통화에서 "최근 지역의사회에서 모임이 있어서 나갔는데 개원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린 후배들이 고생하는데 어른이 나서서 빨리 해결해줘야 한다' 또는 '전공의들이 나온지 4개월이 됐는데 이제 그들이 가져갈 것은 가져가야 한다' 등의 생각을 안하더라"라고 토로했다.

A씨는 "전공의들이 보기에 의협 수뇌부 역시 여전히 뻣뻣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밀어붙이는 것 같다"며 "지난 몇 달 동안 의협이 숱하게 전공의들의 뒤통수를 치면서 이미 신뢰는 바닥을 쳤다"고 말했다.

그는 "앞에서 말로는 무엇을 못하겠는가"라며 "의협 역시 진짜로 전공의들을 우선으로 생각할 생각이 있다면 대전협과 공식적인 대화 자리를 만들고 그동안의 독단적인 것을 사과하는 게 우선"이라고 전했다.

반면, 의협의 전공의 관련 정책이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사직 전공의 B씨는 "2020년도에 의대생으로 투쟁에 참여하면서 의협 집행부에 배신감을 느낀 현재 전공의들 입장에선 의협이 아무리 전공의들의 참여를 늘린다고 해도 색안경을 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이런 근본적 불신이 남아있다보니 의협에 대해 선을 그으려는 것도 이해한다"고 말했다.

B씨는 "관점의 차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공의들이 의협을 지나치게 경계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오히려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올특위 구성 당시 의협에서 2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는데 한명은 사직 전공의 출신의 기획이사가, 또 다른 한명은 전공의는 아니지만 1996년생의 젊은 홍보이사가 들어갔다"며 "나중에 올특위에 전공의들이 들어왔을 때 최대한 우리의 목소리를 크게 내주기 위해 그렇게 구성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상당수 전공의나 의대생들은 이같은 세부적 내용은 모른 채 무조건 '(올특위에) 들어가면 안 된다', '들어가도 인원 구성에서 밀려서 우리의 의견을 낼 수 없다'는 부정적 생각을 갖고 있다"며 "무조건 의협에 벽을 세우기보다 우리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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