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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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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효과 없는 분말소화기만 잔뜩…배터리 화재 대응 주먹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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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화재 참사 아리셀 매뉴얼 허술

일차전지 글로벌 1위 기업 佛 사프트

다량의 냉수·D급 소화기만 효과 명시

아리셀엔 분말 99대, D급 소화기 5대뿐

“리튬 화재, 모래로 진화 시도도 부적절”

경기 화성 일차전지 업체 아리셀이 5년간 안전점검을 받지 않는 등 안전확보 조치가 허술했음이 밝혀진 가운데 아리셀과 같은 염화싸이오닐 일차전지(Li-SOCl2)를 생산하는 세계적 기업들은 화재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을 명확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리셀은 공장에 금속화재 소화기(D급)를 불과 5대만 배치해 희생자들이 일반 소화기로 화재를 진압하다 큰 사고로 이어진 반면 이들 기업은 일반 소화기는 효과가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었다.

세계일보

지난 6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소재 일차전지 제조 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기와 불길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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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세계일보가 확인한 프랑스 일차전지 회사 사프트(SAFT)사는 염화싸이오닐 일차전지에 대한 ‘배터리 정보지(Battery Information Sheet)‘를 통해 염화싸이오닐 일차전지 화재 진압 방법을 기재해 뒀다. 사프트는 일차전지 시장 점유율 1위로 알려진 회사로, 해당 문건은 납품사 등에 배터리 안전 정보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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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일차전지 생산 회사 사프트(SAFT)의 염화싸이오닐 일차전지(Li-SOCl2) 배터리 정보지(Battery Information Sheet). 배터리 화재 진압 수단을 ‘다량의 냉수’와 D급 소화기로 명시하고 있다. 모래, 분말 소화기 등은 사용하지 말라는 문구도 적혀있다. 문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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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건에는 배터리 화재 진압 수단으로 “다량의 냉수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부 리튬 배터리에는 D급 소화기만이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문건에는 “휴대용 소화기와 같이 작은 양의 물은 절대 사용해선 안 된다”며 “일반 분말 소화기는 효과가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다른 일차전지 기업인 이스라엘의 타디란(TADIRAN)사도 배터리 화재 진압 수단을 명확히 소개하고 있다. 타디란의 염화싸이오닐 일차전지 관련 배터리 정보지에는 화재 발생 시 D급 소화기를 사용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두 회사 모두 분말·이산화탄소·할론 소화기는 사용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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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일차전지 생산회사 타디란(TADIRAN)의 배터리 정보지. 배터리 화재 진압 시 D급 소화기만 사용하라고 안내돼 있다. 모래, 이산화탄소, 분말 소화기 등은 사용 금지라고 강조돼 있다. 문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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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20년 아리셀이 화성시에 제출한 ‘화학사고위험 및 응급대응 정보요약서’에 따르면 공장에는 D급 소화기를 5대만 비치됐다. 리튬배터리 화재에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진 분말 소화기만 99대에 달했다. 애초에 초기 진압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화재 사고 당시 폐쇄회로(CC)TV 영상에는 직원들이 일반 소화기를 사용해 진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담겼다.

또한 문서에 따르면 방독마스크와 보호복, 안전화 등도 8세트뿐이었다. 염화싸이오닐은 화재 발생 시 기화돼 독성물질로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피부 접촉과 호흡에 주의해야 한다. 사프트의 문건에는 “모든 화재 상황에서는 자가호흡장치를 착용하라”고 안내한다. 타디란의 문건에도 “화재 진압 시 자극적인 증기를 피하기 위해 자가호흡장치를 착용해야 한다”고 쓰여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SOCL2는 인체의 점막에 닿게 되면 화상을 일으킨다”며 “화재로 SOCL2가 유출됐을 때 호흡하게 되면 숨을 쉬지 못하고 패닉이 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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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일각에서는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리튬배터리 관련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진압 방법이 부재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반면 해외 기업들의 화재 대응 매뉴얼은 일관적이었다. 특히 두 기업 모두 화재 발생 시 모래를 사용하지 말라고 강조한 점이 주목된다. 아리셀 공장 화재 발생 당시 소방 당국이 마른 모래 등을 활용해 진화하는 방식을 검토했지만, 리튬이 소량이라 물을 사용했다고 밝힌 것과는 대비된다. 박 교수는 “현재 리튬 관련 화재는 특수 약재나 모래로는 진압이 불가능하고 화재 스케일에 준하는 대량의 물을 사용하는 것이 유일한 진화 방법”이라며 “대형 사고는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예측이 어렵다. 상황에 따른 정확한 대응 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안경준 기자 eyewher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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