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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5 (목)

[오세훈 시장 2주년, 시민사회 릴레이 기고] ①이토록 하찮은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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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2022)에 따르면 약 44만의 주택 이외의 거처 거주 중 고시원·고시텔 등이 약 15만8000가구에 달한다. 그중 약 8만1000가구가 서울에 산다.

서울시는 정책 자원으로 고시원을 활용하고 있다. 매년 노숙인 약 1000명에게 2~3개월의 주거비를 지급하는 ‘임시주거지원사업’은 대부분 고시원 월세 지원 방식으로 이뤄진다.

경향신문

해당 사업이 2010년 ‘G20 정상회의와 관련한 노숙인 대책’에서 시작된 점을 기억한다면, 존재를 비가시화하려는 의도가 녹아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서울시는 가난한 이들의 주거 문제를 고시원이라는 아류 집 상품, 비적정 임대시장에 떠넘겨 왔다.

팬데믹 종결 이후 고시원 거주자들이 쫓겨나는 일도 빗발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역 앞 A 고시원은 폐업을 이유로 주민들을 한 달 만에 내보냈다. 5월 회현역 인근 B 고시원 건물주 측은 한 달의 기간도 주지 않고 주민들에게 퇴거를 통보했다. 건물 노후가 이유였다. 이 고시원 주민 일부는 지난해 바로 밑 C 고시원이 ‘C 스테이’로 고급화되며 이미 한 차례 쫓겨난 바 있어 더 서러웠다. 건물주는 같았다.

운영자의 이윤 획득 전략 변화에 따라 노숙인의 주거 권리는 너무도 하찮은 것으로 취급당한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 5일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와 조찬 후 ‘2024홈리스주거팀’ 활동가들에게 “고시원은 민간 소유다. 리모델링 하는 데 협조해야 하지 않겠냐”라며 재산권을 신줏단지 모시듯 할 뿐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약자동행지수’ 첫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수치가 기준연도인 2022년 대비 11% 상승했다고 자축했다. 특히 주거지수가 가장 높았고, 그중 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 규모가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했다. 이 지표는 주거 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 가구 수를 세어 산출된다. 그러나 지수는 공급량의 단순 규모뿐 아니라 적절성도 반영해야 한다.

홈리스행동이 지난해 말 심상정 정의당 전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0월 기준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주거취약계층 매입임대주택 신청자는 2951명인데 비해 선정자는 849명에 그쳤다. 선정률이 29%로 매우 낮다.

양뿐 아니라 ‘질’도 따져야 한다. 지난해 서울에 공급된 주거취약계층용 임대주택 4060호 중 90.7%는 전세임대주택이다. 즉, 대부분은 주택 공급이 아니라 보증금 ‘지원 프로그램’ 운영 실적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난해 공급된 주거취약계층용 매입·건설임대주택은 고작 374호가 전부다.

서울시의 ‘약자동행지수’는 임대주택에서 미끄러진 이들의 낙담, 공급된 주택의 질적 수준, 쫓겨나는 이들의 한숨 등 중요한 사정들을 삭제했다는 점에서 객관으로 포장된 선전도구에 불과하다.

지난 5일 오 시장과 한 후보자의 조찬회동이 동자동 쪽방 골목에 있는 어느 ‘동행식당’에서 열렸다. 홈리스를 들러리, 배경 세우는 행태다. 오세훈 시정이 ‘약자팔이’라는 비판을 면하려면 더 이상의 기만을 중단하고, 주거권 보장을 통해 쪽방 주민, 고시원 주민 등 노숙인의 약자성을 해소할만한 진정성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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