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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 (금)

부모도 자식도 꺼리는 韓 요양원…새 친구 만나러 이사하는 日 요양원[현지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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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이런 요양원 왜 없나요]
품격 있는 간병에 힘쓰는 일본
고소득층부터 생활보호자까지
다양한 요양원 수용해 ‘돌봄’ 제공

규제에 꽁꽁 묶인 한국 요양원
새로운 것 시도는 엄두도 못 내


매일경제

도쿄 추오구 코코판 가치도키 요양원에서 색칠하기 놀이를 하고 있는 어르신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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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쇼니 아쇼보오!(같이 놀자!)”

지난 12일 돌아본 도쿄 추오구의 코코판 가치도키. 이곳은 일본 요양업체인 각겐에서 운영하는 서비스지원형 고령자 주택이다.

요양원 한 곳의 놀이방에서는 할머니 3분이 요양보호사 2명의 도움을 받으며 색칠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사과를 그리는 것이 이날의 주제였는데 손바닥에 붉은 크레파스가 잔뜩 묻는 것도 모른 채 모두 그리기에 열중하는 모습이었다. 표정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한 할머니는 “(요양원에) 또래가 많아서 새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같이 노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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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이 살던 집을 그대로 옮겨온 코코판 가치도키 요양원의 1인실 모습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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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 등을 혐오시설로 인식해 한적한 시골에 지을 수밖에 없는 한국과 달리 코코판 가치도키는 시내 중심부에 가까운 53층 고층 주상복합아파트 1~4층에 있었다.

아파트 용지 일부가 추오구 땅이었는데, 건설 허가를 내주는 대신 복지시설을 추가하도록 한 것이다.

이곳에는 총 34개의 방이 있다. 1인실 30곳과 부부가 함께 쓸 수 있는 2인실이 4곳이다. 모든 방에는 욕실과 화장실, 부엌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독립적인 생활도 가능하다.

이곳 시설에 입소하는 것을 새로운 집에 가는 이사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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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놀이에 만들어진 어르신들의 작품이 복도 벽에 걸려있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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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가즈키 각겐코코펀 가치도키 사업소장은 “일본 요양 등급상 요지원 1~2와 요개호 1~2 등 주로 경증 환자들이 많다”며 “혼자서 생활도 가능하지만 식사나 청소 등의 부담을 덜고 싶은 고령자들에게 인기”라고 말했다.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는 평가다. 1인실에 입주할 경우 임대료와 관리비, 생활지원서비스료 등으로 한 달에 14만3700엔(약 127만원)만 내면 된다. 식사비는 하루 3끼를 모두 먹을 경우 1500엔 선이다.

고바야카와 히토스 각겐코코펀 대표는 “일본 개호보험에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원해줘 월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며 “개인이 내는 비용은 본인 연금으로 충분히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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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세타가야구의 츠루마키노이에 요양원 전경. 지난해 8월 지어져 산뜻한 3층 건물이 인상적이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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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들린 도쿄 세타가야구의 츠루마키노이에. 사회복지법인인 호유카이에서 운영하는 이곳에는 지난해 지어진 산뜻한 3층 건물에 108명의 노인이 생활하고 있다.

일본 요양 등급상 요개호 3~5인 중증 등급이 입소하는데, 치매 환자가 대부분이다.

다지마 카요 호유카이 이사는 “별도의 입소금은 없고 한 달에 시설 이용료와 식사비 등으로 15~16만엔 정도만 내면 된다”며 “워낙 인기가 많아서 지금 대기자만 250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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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치매환자도 목욕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첨단 목욕 보조 장비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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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일본 요양시설 분류 중에서 특별노인요양시설에 해당한다. 의료시설을 갖춘 곳은 아니지만 정식 요양보호사에 의해 환자들이 돌봄을 받는다.

특히 모두 1인실에 배정되어 자택 수준의 생활을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경증 치매 환자의 경우 본인이 스스로 요리를 해 식사를 준비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후지마키 케이스케 시설장은 “12명을 하나의 유닛으로 묶어서 5~6명의 요양보호사가 이들을 전담한다”며 “의사가 상주하는 시설은 아니지만 간단한 의료행위는 사전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거기에 맞춰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 지어진 시설인 만큼 이곳에서는 첨단 IT(정보기술) 기능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었다. 우선 108명 전원의 침대 밑에 센서를 부착해 수면활동을 실시간으로 점검한다. 고령자 중에서 상당수가 수면의 질이 떨어져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최대한 줄인다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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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수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해 보여주는 장치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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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마키 시설장은 “하루 수면시간이 55분으로 측정된 어르신의 건강 상태를 분석해 철분 부족이 원인인 것을 알아냈다“며 ”이를 보충해주는 요구르트를 매일 섭취하도록 해 수면시간을 4시간3분으로 끌어올린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2층의 운동시설에는 빔프로젝터가 바닥에 게임 영상을 쏘고, 어르신들이 바닥을 걸어 다니며 풍선을 터뜨리거나 돌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임 시설도 있었다. 움직이기 귀찮아하는 치매 환자들에게 재미를 통해 동기부여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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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세타가야구의 츠루마키노이에 요양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어르신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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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양시설의 특징은 자신의 소득에 맞춰, 질환의 경중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요양시설이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은 고가의 시니어타운과 3~4인실이 주류인 요양원이 전부다.

중산층이 노후를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시설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가정에서 어렵게 요양하는 경우가 많고, 요양시설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설을 같이 둘러본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중산층도 자기 집처럼 이용할 수 있는 요양시설을 만들 수 있도록 관계 법령 정비를 준비하겠다”며 “특히 요양시설에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 충원을 위해 외국인 전용 비자 도입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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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세타가야구의 츠루마키노이에 요양원을 방문한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왼쪽 둘째)이 요양원 설명을 듣고 있다. [도쿄 이승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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