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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이슈 미국 46대 대통령 바이든

최연소 상원의원, 최고령 대통령…결국 ‘나이’에 꿈 접은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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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력 저하 논란에도 재선 도전, 당안팎 거센 여론에 결국 결단

29세에 최연소 상원의원 “내 나이 몇 살이었더라...”

대권 삼수 만에 ‘역전극’ 이루고 당선

“제 나이요? 모르겠어요. 계산해봐야죠.”

21일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한 조 바이든 미 대통령(81)은 지난 1972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됐을 당시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 중 이렇게 말했다. 불과 29세에 상원에 입성하게 된 상황을 두고 언론이 ‘나이’에 집중하자 재치있게 농담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도전해 공화당 현역 의원을 꺾고 당선됐고 이듬해 30세에 취임했다. 당시에도 그의 나이는 화제였고, 이번 11월 대선에서 그의 발목을 잡은 것도 그의 나이였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인 그는 사퇴 직전까지 고령 문제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현대 미국 정치에서 가장 길고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바이든의 정치 경력이 놀라운 결말을 맞이하게 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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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7일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해리 리드 국제공항에서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에 오르고 있는 모습.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고 예정됐던 유세 일정을 취소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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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은 1942년 11월 2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흙수저’ 출신이다. 자동차 영업사원이었던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4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는 과거 부유하지 않은 환경에서 살아왔다(humble beginnings)고 했다.

10살 때 아버지가 실직해 인근 델라웨어주로 이주하면서 델라웨어가 ‘제2의 고향’이 됐다. 델라웨어대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복수 전공했고 이후 시러큐스대 로스쿨에 진학해 졸업한 뒤 변호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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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22년 12월 동성 결혼을 보호하는 '결혼 존중법'에 서명한 후 민주당 의원들 및 부통령 부부, 부인 질 바이든 등과 함께 서명행사를 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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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70년 뉴캐슬 카운티 의원으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2년 뒤인 1972년 델라웨어주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해 공화당 현역 의원을 꺾고 당선됐다. 미 역사상 5번째로 젊은 나이에 당선됐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최연소였다.

그러나 이런 성공과 함께 가족에 비극이 찾아왔다. 상원의원에 당선된 지 한 달 뒤인 그해 12월 18일 교통사고로 아내 닐리아 헌터와 13개월짜리 딸 나오미가 사망했다. 바이든이 워싱턴DC에서 업무를 보던 동안 크리스마스트리를 사오던 길에 아내와 딸이 사고를 당했다. 당시 차에 함께 탔던 장남 보와 차남 헌터는 골절상을 입고 입원했지만 목숨을 건졌다.

바이든은 당시 충격으로 상원의원 사임을 고려했었다. 그러나 주변에서 말려 이듬해 두 아들 입원한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하기도 했다. 그는 의원으로 업무를 하면서도 두 아들을 직접 돌보기 위해 자택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워싱턴DC 의사당까지 120마일 거리를 기차로 매일 통근한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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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2021년 1월 20일 취임 선서를 하고 있는 모습. /UPI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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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역경을 딫고 바이든은 연속으로 6선을 지내면서 36년간 활동했다. 변호사 경력을 바탕으로 상원 법사위원장을 지냈고 외교위원회로 옮긴 뒤에는 외교위원장을 세 차례 지내면서 현대 미국 정치의 굴곡을 최전선에서 겪어왔다. 1988년에는 두 차례 입원해 뇌 동맥류 수술을 받는 위기를 겪기도 했다.

그는 ‘3수’만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논문 표절 의혹으로 낙마했다. 2008년 다시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밀려 실패했다. 다만 그의 상원 경력을 인정 받아 오바마의 러닝메이트가 돼 당시 행정부에서 8년 간 부통령을 지냈다.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준비했지만 2015년 장남 보 바이든이 뇌암으로 사망한 뒤 뜻을 접기도 했다.

그가 드디어 당선된 지난 대선때도 쉽지 않았다. 경선 초기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주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연패하면서 대권 도전이 어렵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유색인종이 다양하게 포함된 지역에서 승기를 잡으면서 역전을 이뤄내 민주당 후보로 올랐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꺾고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임기 초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 Act) 등 굵직한 투자 입법을 이뤄내면서 ‘정책 성과’를 내세웠지만 사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유례없는 고물가, 고이율 등으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 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급기야 고령으로 인한 말 실수 등이 이어지면서 재선 가도에 ‘빨간 불’이 켜졌다.

결정적인 사건은 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첫 대선 후보 TV토론 맞대결이었다. 당시 멍한 표정, 더듬는 말투 등으로 지지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당 안팎에서 사퇴론이 거세졌다. 이후 지난 13일 트럼프의 피격 사건으로 ‘트럼프 대세론’이 거세지자 그가 아닌 다른 후보가 나서야 한다는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그는 2020년 3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난 나 자신을 가교(bridge) 외의 어떤 것으로도 보지 않는다”고 말했었지만 그는 당내에서 터져나오는 사퇴 요구에도 끝까지 완주를 고집하다 이날 그만두겠다고 했다.

상원의원 36년, 부통령 8년에 이어 대통령까지 이룬 그의 화려한 정치 이력은 여기서 끝이 났다.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당선될 경우 민주당 내에서 그의 ‘늦은 결단’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두고두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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