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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토)

모두가 전기차 어렵다며 말릴 때 …"독자기술로 돌파" 혁신 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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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1억대 질주 ◆

매일경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2022년 10월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에서 열린 전기차 신공장(HMGMA) 기공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지난해 10월 촬영된 현대차그룹 HMGMA 건설 현장. 현대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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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전기차로 넘어가야 합니다.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전동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당시 부회장)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했다. 그는 리튬·니켈 등 핵심 광물 가격 안정화, 보조금 정책이 종료되는 시점의 경쟁 구도, 수요 정체기 이후의 전기차 대중화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숫자와 시나리오를 언급하며 좌중을 설득했다. 8년 전 열린 임원 회의 자리에서였다.

당시 회의에 배석했던 한 임원은 "당시까지만 해도 전기차는 수익성이 없는 '시기상조 사업'으로 여겨졌다"며 "전체 자동차 판매량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했다는 점도 전기차 회의론의 근거로 통했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 연구개발(R&D) 거점인 남양연구소 엔지니어조차 전기차는 주행거리가 짧아 단기간에 내연기관차를 대체하는 이동수단이 되기 어렵다고 봤다.

태동하는 전기차 시장에서 신생 기업인 테슬라가 치고 나가는 모습을 정 회장은 예의 주시했다. 이전까지 로드스터, 모델S, 모델X 등 고가 전기차를 팔았던 테슬라는 2016년 들어 보급형 차종인 모델3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현대차그룹의 최신 전기차였던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1회 충전 주행거리가 191㎞에 그친 반면 테슬라 모델3는 360㎞ 이상을 기록했다. 변화를 서두르지 않는다면 현대차그룹은 '추격자(fast follower)' 신세에 머물러야 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기아 R&D 사령탑을 맡고 있던 양웅철 전 부회장을 찾았다. 남양연구소에 전기차 산업의 미래를 집중 조사하는 별도 조직이 꾸려졌다. 결론은 명확했다. '현대차그룹 독자 기술로 전기차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 정 회장의 설득은 결국 현대차·기아 국내 R&D 인력 1만2000여 명을 움직였다.

이후 현대차그룹은 무서운 속도로 전동화를 추진했다. 내연기관차 중심으로 짜여 있던 R&D 조직이 전동화 중심 체제로 전환됐다. 기존 내연기관 모델에 모터, 배터리를 집어넣은 개량형 전기차 대신, 전용 플랫폼을 활용한 전기차 신모델 개발을 가속화했다. 2019년에 선보인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현대차그룹의 발 빠른 전동화 전략은 결실을 맺고 있다. 최근 3년간 열린 글로벌 3대 '올해의 차' 시상에서 현대차그룹은 총 30개 상 가운데 13개를 수상하며 완성차 그룹 기준 1위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도요타가 3개를 수상하는 데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차그룹이 수상한 13개 차종 모두 전기차 였다. 전기차 분야에서 시장 선도자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현대차·기아를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기대치도 높아지고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쌓아 올린 '품질 경영'의 토대 위에서 정 회장은 현대차·기아의 위상을 '선도자(first mover)'로 격상시켰다.

양 전 부회장은 "정 회장은 현대차의 기술력을 믿었다. 자동차 산업에 혁신의 바람이 불 때, 정 회장에게는 우리가 앞으로 밀고 나가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며 "그 결과 전동화라는 마라톤에서 현대차그룹은 후발주자들이 따라잡기 버거울 만큼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하루에도 8개 안팎의 미팅을 잡으며 각계각층 인사를 만나는 총수로도 유명하다. 그는 다방면으로 이해도가 높으면서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T자형' 경영인을 추구한다. 자동차 산업이 더 이상 완성차라는 한정된 영역에 머물지 않고 정보통신기술(ICT)을 비롯해 예술, 건축, 로보틱스 등 다양한 업종과 융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이야기를 듣고 소화해내는 정 회장의 판단과 결정에 더욱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정 회장은 필요할 때 각 계열사 사장뿐만 아니라 전무, 상무 등 실무급 임원들과도 이메일로 편히 일대일 소통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현대차 고위 임원은 "정 회장은 해외 공장에 출장을 올 때면 주재원들의 가족까지 초청해 식사를 대접할 정도로 소탈하고 격의 없는 오너"라면서 "일 외적인 부분에서 불필요한 의전이나 비효율을 지양하는 실무형 경영인"이라고 말했다.

[문광민 기자 / 박소라 기자 /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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