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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7 (토)

“CCTV 100대 이 잡듯”… ‘울산 돈다발’ 찾은 경찰의 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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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0만원 발견한 신고 전화에

울산남부경찰서 “미스터리한 사건”

블랙박스 확인· 은행 압수수색

강력수사하듯 뒤져… 주인 품에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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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돈다발 주인을 찾으려고 형사과 3개팀이 폐쇄회로(CC)TV 100대, 블랙박스 6대를 뒤졌습니다.”

이달 5일부터 열흘간 울산 7500만원 돈다발 사건을 수사해온 박종구 울산남부경찰서 형사3팀장은 23일 “감식반 등 강력사건을 수사할 때 쓰는 기법까지 동원해 겨우 주인을 찾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박 팀장은 이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오만원권 돈다발을 아파트 화단에 그것도 두 번이나 던져둔 게 누군지 미스터리했다”며 “보이스피싱이나 도박 등 범죄와 관련 있는 돈이었다면 화단 같은 곳에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울산남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달 5일 오전 10시 한 통의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전날 울산 남구 한 아파트 화단에서 경비원이 5000만원 돈다발을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6일 오전 7시45분에는 같은 아파트 환경미화원이 2500만원 돈다발을 또 발견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박 팀장은 “예사롭지 않은 사건이라는 촉이 왔다”며 “분실물 사건을 주로 맡는 생활질서계가 아닌 강력사건을 수사하는 형사3팀에 사건이 배정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일보

박종구 울산남부경찰서 형사3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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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먼저 주변 CCTV부터 살폈다. 아파트 화단을 확인할 수 있는 CCTV는 2대가 있었는데, 하필 화단을 제대로 비추는 게 없었다. 형사3팀은 아파트 주변 CCTV와 차량들 블랙박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박 팀장은 “팀원들이 (확보한 영상을) 8배속, 16배속으로 돌려 밤새워 모니터만 들여다봤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돈에 묶인 ‘띠지’를 주목했다. 띠지엔 은행명과 인출날짜가 적혀 있다. 당장 은행을 통해 확인하려면 압수수색 영장이 필요했다. 경찰은 ‘7500만원 돈다발이 나왔는데, 전후 상황이 이상하다’며 검사와 판사를 설득해 영장을 발부받았다.

경찰이 해당 은행 고액인출자 명단과 세부 통장내역을 일일이 확인한 결과 신고 전화 열흘 만에 돈 주인이 80대 A씨라는 것을 밝혀냈다. 하지만 A씨가 돈 주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더 필요했다. 그래서 띠지 지문감식까지 진행했다. 박 팀장은 “A씨는 2021년 주택이 재개발되면서 보상금으로 3억원을 받게 됐고, 이전엔 폐지를 주워 생활비를 벌었지만, 보상금을 받은 뒤엔 일을 그만뒀다는 사실도 파악됐다”고 말했다.

돈다발 주인이 A씨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30년 전 연락이 끊긴 자녀들이 나타나는 일도 벌어졌다. 박 팀장은 “까다로운 수사였지만 결국 돈다발 전모를 다 파악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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