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8 (일)

“러시아와 협상 용의”… 우크라는 왜 中 왕이에 밝혔나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지원에 부정적인 트럼프 피격 후 태도 180도 변해… 협상 선수치기?

조선일보

중국을 방문 중인 드미트로 쿨레바(왼쪽) 우크라이나 외무 장관이 24일 광저우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회담에서 쿨레바 장관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대화·협상을 원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A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2년 6개월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평화 협상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돌아서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당초 러시아의 요구대로 점령지를 양보하는 평화 협상은 불가능하며, 러시아군 철수와 기존 영토 복원 등 ‘평화 공식 10개 항’에 의거한 협상만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반강제적으로 평화 협상에 끌려가느니 ‘선수’를 쳐서 협상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중국을 방문 중인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24일 광저우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을 만나 “아직 그럴 조짐은 없지만, 러시아가 선의로 협상할 준비가 됐다면 우리는 (러시아와) 대화와 협상을 원하고,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또 “우리의 목적은 공정하고 항구적인 평화의 실현”이라며 러시아와 대화의 목적이 전쟁을 끝내는 평화 협상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이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이 있는 제3국 고위 관료를 대상으로 평화 협상에 대해 긍정적인 언급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크라이나는 그동안 러시아와 직접적 평화 협상에 부정적 태도를 취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여러 차례 “우리는 협상에 열려 있다”는 언급을 할 때도 “군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려는 의도”라며 의심해 왔다. 특히 러시아가 점령지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이상 협상 테이블에 함께 앉을 수조차 없다는 것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기본 입장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15일 러시아가 불참한 가운데 자국의 평화 공식 10개 항 실현을 논의하는 ‘우크라이나 평화 정상 회의’를 스위스에서 열었다.

우크라이나 측의 기류 변화가 감지된 것은 지난 13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중 불의의 총격을 당한 직후다. 젤렌스키는 이날 트럼프에게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15일에는 “올해 11월 제2차 평화 정상 회의를 추진하겠다. 이번에는 러시아 대표단도 참석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또 19일에는 트럼프와 직접 전화 통화를 하고 “전쟁 종식을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까지도 트럼프를 향해 “우크라이나에 부당한 협상을 강요하면 ‘루저(패배자) 대통령’이 될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했던 데서 180도 달라진 것이다.

트럼프는 “11월 대선에서 당선되면 내년 1월 취임 전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해 왔다. 이는 우크라이나를 협상장에 강제로 끌고나가 사실상 러시아가 원하는 방식의 무기한 휴전 혹은 종전 조약에 도장을 찍게 만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미국 국내와 서방 동맹국들 사이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피격 이후 트럼프의 대권 가도에 탄력이 붙으면서 ‘불가피한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 등은 “미국의 지원 없이 버티기 힘든 젤렌스키 입장에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대한 유리하게 끌고 갈 필요성이 생겼다”고 분석했다.

우크라이나의 최근 행보는 이러한 변화에 대한 일련의 대응 전략으로 파악된다. 굳이 중국에서 평화 협상 가능성을 밝힌 것도 중국을 지렛대 삼으려는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다. 중국은 서방과의 대립 구도 속에 러시아 편을 들면서도 서방과 경제·무역 관계를 파탄 낼 수 없는 입장이다. 이런 중국에 중재자 역할을 맡겨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더불어 중국의 압도적 경제적 영향력을 받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있는 개발도상국)’의 지지가 따라올 가능성도 크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국제사회 여론전에서 러시아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마주 앉아 휴·종전 문제를 논의한 것은 개전 직후인 2022년 3월이 마지막이었다. 무려 2년 4개월여간 대화가 중단됐던 셈이다. 그러나 중국이 중재에 적극 나서더라도 러시아가 응할지는 확실치 않다.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 중재에 나서면서 자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러시아는 또 대선을 건너뛰고 임기를 연장한 젤렌스키를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협상을 하겠다는) 메시지 자체는 우리 입장과 일치하나, 자세한 내용을 들여다봐야 한다”며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

조선일보 국제부가 픽한 글로벌 이슈! 뉴스레터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275739

국제퀴즈 풀고 선물도 받으세요!https://www.chosun.com/members-event/?mec=n_quiz

[파리=정철환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