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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9 (목)

영드 ‘베이비 레인디어’…스토킹 범죄를 통해본 결핍·자기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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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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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선보인 넷플릭스 7부작 영국 드라마 ‘베이비 레인디어’는 스토킹 범죄 이야기다. 코미디언 지망생이자 바에서 일하는 도니(리처드 개드)는 손님으로 온 마사(제시카 거닝)에게 작은 호의를 베풀었다가 스토킹에 시달린다. 도니의 평범한 호의를 마사는 멋대로 관심과 사랑으로 왜곡해 버렸다. 마사는 날마다 바를 찾아가고, 도니의 소셜미디어(SNS)를 뒤진다. 그를 “아기 순록”(베이비 레인디어)이라 부르며 끊임없이 이메일을 보내 마음을 표현한다.



영화 ‘미저리’처럼 집착하는 마음은 스릴러 장르의 단골 소재다. 주로 스토킹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춰 그의 병적인 심리 변화와 극단적인 행동을 통해 공포를 선사해왔다. 가해자는 스스로 사랑한다고 믿는 피해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마음이 널을 뛴다. 피해자가 자기 때문에 힘들어하면 “난 널 사랑하니까” 그를 단념했다가도, 이내 또 특정 행동을 왜곡해 “넌 날 사랑하는 게 맞으니까” 마음을 바꾼다. 시청자는 이완과 수축을 반복하는 전개에 심장 쫄깃해지고 쉽게 빨려 들어간다. 스토킹 범죄를 다룬 작품의 공통점이다.



‘베이비 레인디어’는 이런 익숙한 규칙에서 벗어나 스토킹 범죄와 함께 인간의 결핍과 자기혐오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마사도 도니도 실은 각자가 겪은 과거 사건 때문에 마음에 상처가 났다. 마사는 이를 초반에 치유하지 못하고 방치해두면서 애정을 갈구하는 끔찍한 범죄자가 됐다. 도니 역시 인정욕구와 자기혐오가 결합하면서 처음에는 마사의 관심과 집착을 끊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편당 30분인데도 감정의 노고가 만만찮다.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무겁고 머리가 복잡해진다. 도니가 마사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처럼 읽히는 마지막 장면은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렇다고 스토킹 범죄를 미화하지는 않는다. 메시지가 위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경찰은 도니의 스토킹 피해 신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지금까지 왜 신고 안 했냐”고도 묻는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과 다르지 않다. 마사가 도니의 가족까지 괴롭히면서 스토킹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 드라마는 극본가이자 주연배우인 리처드 개드의 실제 경험담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그에 따르면 4년여간 받은 이메일은 4만1071통, 음성메일은 350시간에 이른다고 한다. 가해자에게서 벗어난 지 2년 뒤 이 경험을 연극으로 만들어 2019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프린지 축제에서 선보였고, 2021년 넷플릭스에서 영상화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드라마가 공개된 뒤 마사의 실존 인물이라는 이가 사실이 왜곡됐다고 주장하며 법적 조처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혀 또 한번 주목받고 있다. 오는 9월 열리는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짧은 회차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리미티드·앤솔러지 시리즈’ 부문 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여우조연상·극본상 후보로 올랐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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