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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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락 | 경제산업부장
정부를 비롯해 주요 경제분석 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적어도 내년까지 완만한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본다. 가계와 기업이 돈(소득)을 현재보다 더 벌고 일자리도 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성장률은 가계·기업·정부 3대 경제 주체 성장의 가중평균을 의미하는 터라 경제주체별, 산업별 성장 속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특정 수출 산업 의존도가 큰 우리의 경제 구조 탓에 성장률에만 주목하면 평균의 함정에 쉽사리 빠진다. 특정 부문 수출에 한정된 경제 회복은 그 온기가 널리 퍼져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취약 부문의 어려움을 놓칠 수 있으며, 나아가 양극화·불균형 심화에 따른 사회 전반적인 불안 고조에 제때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현재 경기 흐름이 이러하다. 수출은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지만 자영업자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으며 민간 소비는 예상보다 회복이 더디다. 내년이면 부문별 양극화·불균형 심화가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될 것이다. 잘되는 부문만 정부가 주목할 때 우리 사회의 갈등 비용이 커지고 사회 통합은 요원한 일이 된다.
현재의 경기 흐름은 이명박 정부(2008~2013) 3년 차 때와 유사하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시작한 이명박 정부는 극심한 혼돈을 거친 뒤 2010년 성장률(2020년 기준년)이 7.0%에 이르렀다. 한해 전 성장률이 0.8%였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놀랍고도 이례적인 속도의 회복이었다. 하지만 이는 원화 가치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에 기반한 급격한 수출(13.1%) 회복에 힘입은 바 컸다. 수출 대기업 부문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삶은 여전히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단적으로 2007년(3.2%) 이후 슬금슬금 오르던 실업률은 2010년 3.7%까지 치솟았다.
이명박 정부의 ‘반응성’은 기억해둘 만하다. 2010년 초부터 ‘윗목은 따뜻하지만 아랫목은 차갑다’(정운찬 당시 국무총리)란 목소리가 정부 중심에서 나온 데 이어 그해 8·15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화두로 제시했다. 수출 대기업 나 홀로 회복이 가져올 부작용을 예감하고 정권 출범 당시 앞세운 ‘기업 프렌들리’란 국정 기조의 전환을 나름대로 꾀한 것이다. 해를 넘겨선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대규모유통업법이 제정되고 재벌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차단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개정(사익편취 규제 도입)과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일감 몰아주기 과세 도입)이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보수 정부의 좌클릭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이에 견주면 윤석열 정부의 반응성은 낙제점이다. 정부의 경기 인식을 보여주는 그린북은 민간 소비에 대해 ‘회복의 조짐’이 포착된다고만 수개월째 반복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물론 국책연구원(한국개발연구원)도 일찌감치 부진이라고 판단하는 와중에 정부만 애써 민간 소비 부진을 모르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서 한국이 미국에 이어 주요 선진국 중 두번째로 높은 성장률이라며 스스로 평균의 함정에 빠진 모습을 보였다. 오랜 경제 관료를 지낸 한덕수 국무총리도 국회 대정부 질의 때 이와 다르지 않은 인식을 보인다. 레토릭뿐만이 아니다. 양극화·불균형 심화가 뻔한 상황에서도 2025년 예산안과 세법 개정안엔 이에 대한 대비 내지 보완을 위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어쩌면 내년은 성장은커녕 금융 안정을 걱정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안정이 무너지면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어느 경제 주체가 투자를 하고 소비를 하겠는가. 6월부터 본격화된 서울 중심의 집값 불안과 가계빚 증가는 수출 훈풍에만 안심할 수 없는 한국 경제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한은이 사실상 이대로라면 기준금리를 내리기 어렵다고 경고할 정도로 금융 불안정 수위가 높다.
그럼에도 금융당국과 국토교통부의 어지러운 메시지는 금융 안정을 확보할 역량을 과연 정부가 갖추고 있는지 의구심을 던진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 내 다양한 이견이 여과 없이 표출되고 그에 따라 혼란이 심화하는 현실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 건지 의아스러울 정도다. 용산이 고집 부릴 땐 직업 관료라도 운전대는 꽉 잡고 있어야 한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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