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후 3시 국방과학연구원(ADD)의 충남 태안 안흥 시험장. 한국이 지난해 체계 개발(무기 개발)을 완료, 연말 전력화 예정인 ‘레이저 무기 블록 1(Block-Ⅰ, 이하 레이저 무기)’의 실물이 처음으로 국내 취재진에 공개됐다.
태안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ADD의 언덕 시험장에서 연구진이 원격 지시를 내렸다.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50~60m 상공에 떠 있던 DJI의 쿼드콥터 팬텀 4 드론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붙었다. 공중에서 동체에 불이 붙은 드론은 뱅글뱅글 제자리 돌기를 하며 바다로 추락했다.
이를 지켜보던 취재진은 “어디서 쏜 거냐”며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방사청 관계자가 “좌측 약 1㎞ 방향에 무기가 있다”고 안내하고서야 파악할 수 있었다.
레이저 대공무기는 광섬유로부터 생성된 광원 레이저를 표적에 직접 조사해 무력화시키는 신개념 미래 무기체계로, 근거리에서 소형무인기와 멀티콥터 등을 정밀 타격할 수 있다. 사진은 레이저 대공무기 시험 발사 모습.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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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안으로는 볼 수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날 공개된 ‘레이저 무기 블록 1(Block-Ⅰ)’은 영화 '스타워즈'(1977년) 광선 무기의 현실판이었다. 적기(敵機)로선 영문도 모른 채 동체에 구멍이 뚫리고 불이 붙는 셈이다. 정부는 북한의 소형 무인기와 멀티콥터 드론을 격추시킬 대공 무기로 레이저 무기를 개발했다. 이번 시연에 쓰인 DJI의 드론은 실제 북한이 농지 지형 파악, 국방·재난 등에 쓰고 있는 모델이다.
ADD 측은 이날 취재진 앞에서 석 대의 드론을 연달아 격추시켰다. 모두 수 초 내에 이뤄졌다.
이 가운데 한 번은 취재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띄운 촬영용 드론을 시연 표적으로 잘못 맞추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실제 시험 때라면 벌어지지 않았을 단순 착오였다. 대당 수억~수십 억원에 달해 훈련 때도 한발 한발 아껴 쏘는 대공 요격 미사일이었다면 시연 자체에 차질이 빚어졌을 텐데, 한 발에 수천원 정도가 드는 레이저 무기라 ‘재시연’도 쉽게 가능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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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 1의 실물이 있는 시험장으로 이동하니, 국방(카키)색의 컨테이너 박스가 눈에 띄었다. 바로 옆에 세워져 있는 표적위치 확인장치가 아니었다면 가건물로 착각할 정도였다. 도심지나 산간 지역에도 위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 표적확인 장치는 레이저 무기의 ‘눈’에 해당하는데, 광학·적외선 카메라가 달려 있다. 상단부의 레이저 발사관엔 ‘레이저 창을 맨눈으로 보지 마시오’란 문구가 적혀 있었다.
당국이 개발한 레이저 무기는 표적이 탐지되면 이 장치로 위치를 확인하고, 추적·조준·격추를 거의 동시에 진행한다. 레이더 탐지와 조준, 발사가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대공 미사일과 달리 “보는 즉시 바로 쏜다”고 강조하는 배경이다.
지난 2014년 9월 15일 백령도 서쪽 수중에서 발견된 북한 소형 무인기 잔해(왼쪽)과 같은해 원산 송도원국제야영소 개관식 당시 모형항공기 시범에 등장한 북한 무인기 [중앙포토ㆍ조선중앙TV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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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저 무기는 돋보기로 열을 모아 종이를 태우는 간단한 원리에서 출발했다. 고대 그리스 아르키메데스가 청동 거울을 이용해 로마의 함대를 불 태웠다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 대신 자연광이 아닌 적외선 빔을 쏘는 게 다르다. 가시광선(파장 380~780nm)보다 파장이 길기 때문에 육안으론 감지가 안 된다.
이론적으론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쏠 때마다 1달러(약 1500원)의 전기 값만 들고, 탄약이 필요 없으니 군수 지원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이와 동시에 수km 떨어져 있는 500원 짜리 동전도 뚫을 수 있는 정확도와 출력을 갖췄다는 게 ADD와 방위사업청의 설명이다.
상대적으로 값싸고 소모품 개념인 무인기가 ‘창’이라면, 탄약이 필요 없어 무한대로 쏠 수있는 레이저는 가성비 ‘방패’인 셈이다. 영·미 등 선진국들이 앞다퉈 레이저 무기를 개발하는 배경이다.
다만 장점이 많아도 레이저 무기를 ‘게임 체인저’로 보기엔 갈 길이 멀다. 구름이 많거나 반대로 햇빛이 너무 강해도 표적을 잘 못 잡는 등 기상 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한 번 쏠 때 한 개 표적 밖에 대응을 못 하는 등 보완 요소도 많다. 여기다 아직까지 전술급 유도탄을 격추시킬 정도의 출력은 미국 등 선진국도 확보하지 못 했다. 수백 억원에 이르는 개발비를 고려했을 때 “정말 가성비 무기가 맞느냐”는 지적도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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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1983년 소련의 핵·미사일을 억제하기 위한 전략방위구상(SDI)을 수립하면서 위성에서 레이저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스타워즈 계획'이라고도 불렸는데, 당시 기술적 한계로 현실화하지 못 했다. 미국은 2030년까지 메가와트(MW)급 레이저 발진기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의 레이저 무기 개발은 1999년 ADD의 ‘DF 레이저 장치’가 처음이었지만, 이후 정권에 따라 레이저 무기 기술 연구가 중단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 본격적으로 급물살을 탄 건 2014년 북한의 무인기 침투 사태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ADD가 2015년부터 기술 개발을 재개해 2019년 본격적인 체계 개발(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총 871억원을 투자했다.
ADD와 방사청은 공식 확인하진 않지만, 블록 1의 출력은 20kW(킬로와트) 정도다. 박격포를 뚫으려면 최소 100kW 정도는 돼야 한다고 한다.
당국은 점차 출력은 높이고, 플랫폼은 다양화한 레이저 무기를 개발할 계획이다. 블록 1은 고정형이지만, 블록 2는 이동형으로 개발될 예정이다. 방사청은 연내 블록 1 양산 물량을 군에 인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전력화하는 사례라고 방사청은 설명하고 있다.
ADD 서용석 수석연구원은 “향후 박격포, 전술 유도탄까지 레이저로 격추시킬 수 있도록 100~300kW급 출력을 낼 수 있는 발진기 기술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며 “중고도 무인 정찰기(MUAV) 등 다양한 플랫폼에 레이저 무기를 탑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흥=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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