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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대학강사·교사→가사관리사…큰돈 들여 한국 오는 이유 들어보니[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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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100만 외국인력 시대, 우리 옆 다른 우리 3-① 100명의 필리핀 돌봄전문가

[편집자주]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외국인 취업비자 소지자는 92만명을 넘어섰다. 한국은 현재 합계출산율 0.7명대의 인구절벽에 처해있고 2025년에는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할 것으로 보여 외국 노동인력 확대는 '선택'이 아니라 받아들여야할 '현상'이 됐다. 100만 외국노동시대를 앞둔 우리 사회가 '우리 옆 다른 우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지, 올바른 다문화 시대 조성을 위한 고민을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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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 전경. /사진=조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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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 시대, 작은 돌파구로 기대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한국 입국 준비는 끝났다. 오는 6일 한국에 첫발을 내딛는 그들을 지난달 19일 현지에서 만나봤다.

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에서 특별 교육을 받은 100명의 교육생 중 대다수는 4년제 대학 이상의 학력을 지녔다. 한국어는 서툴렀지만 평상시 대화도 영어로 하는 필리핀인만큼 영어는 유창했다.

780시간 이상의 교육과 부대 비용을 지불하면서 한국행을 택한 그들은 각자의 목표와 꿈이 있었다. 가족 부양이 한국행의 중요한 이유였지만 미래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지원한 이도 있었다.

케어기버(Caregiver)-NC2 자격을 갖춘 이들은 △기본역량 18시간 △일반역량 18시간 △핵심역량 700시간 등 736시간의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핵심역량 교육에는 영유아·아동을 포함해 노인에 대한 돌봄과 지원 교육이 포함된다. 응급상황 대처와 건강하고 안전한 환경을 유지하는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교육이 끝나면 병원과 기관에서 수습 과정을 밟아야 한다. 총 780시간이 넘는다.

우리나라 간호조무사 수준의 전문 교육을 받는데 해당 케어기버가 되기 위한 선발 조건도 까다롭다. △최소 10년의 기본교육을 이수했거나 10학년과 동등한 대안 학습 시스템 수료증 이수자 △구두와 서면 모두 의사소통 가능한 자 △간병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신체적 및 정신적 능력 보유자 등의 조건을 갖춰야 교육 신청이 가능하다.

4년제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영어교사로 일했던 35세 미쉘은 케어기버 자격증 교육비로만 2만 페소가 넘는 돈이 필요했다. 한화로 47만원 가량이지만 현지에서는 매우 큰 액수다. 교육을 받기 위해 통상 2-5시간을 이동하고 때로는 숙박도 해야 한다. 이런 부대비용은 평균 6만페소(약 141만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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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이주노동부에서 진행된 한국산업인력공단의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교육 현장. /사진=조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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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살짜리 아이를 포함, 9명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미쉘은 "한국에서의 월급이 많아서 좋다. 최소 한달에 3만페소(약70만원)를 필리핀 가족에게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37세 리즈는 전업주부다. 남편과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그녀는 가족들 삶의 질적 변화와 아이를 위해 케어기버 자격증을 취득했다. 버는 돈의 절반은 집으로 송금할 계획의 리즈는 "가족이 교육과 한국으로 가는 비용을 모두 대줬는데 빨리 돈을 벌고 싶다"며 "버는 돈의 절반 이상을 필리핀으로 보내 아이를 위해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에서 전문직이 되면 나 혼자의 생활이 가능하지만 케어기버가 되면 가족 부양이 가능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한 28세 조안은 대학에서 역사와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온라인을 통한 영어 강사도 했다. 조안은 대학 강사의 한 달 벌이가 3만페소(약 70만원), 온라인 강사가 4만5000페소(약 105만원)정도라고 기억했다.

조안에게 케어기버는 미래 경쟁력이자 워라밸을 보장할 수 있는 직업이다. 그는 "온라인 영어 강의는 12시간 일하면서 항상 긴장하고 밝은 모습을 유지해야 하지만 한국의 케어기버는 8시간만 일하면 된다"며 "최소 2만페소정도 가족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저축해서 나중에 대학에서 역사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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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입국하는 필리핀가사관리사 리즈(37)는 4년제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남편과 아이를 부양하고자 한국행을 택했다. /사진=조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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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입국하는 100여명의 케어기버들은 모두 각자의 꿈과 목표로 부풀어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부분도 있다. 언어와 대우다.

"가장 걱정되는 건 사모님과 사장님이 나쁘지 않은지, 욕이나 나쁜 말을 하거나 때리지 않을지 걱정이다", "사장님이 영어를 못하는 게 걱정이다. 의사소통이 원활하려면 영어가 돼야 한다", "사장님과 사모님의 인성이 좋다면 그 가정에서 일할 수 있고 시범 사업이 끝나고도 계속 일하고 싶다"

이들의 적응을 돕기 위해 한국산업인력공단 필리핀 EPS센터는 특별 교육을 준비했다. 아우레아 자비에르 아테네오대학교 한국학 학과장은 '한국에서 지켜야 할 규칙과 하지 말아야할 행동'에 대한 교육을 맡았다. EPS센터는 이외에도 실생활에서 쓰는 한국어와 재활용 하는 법 등을 케어기버에게 가르쳤다.

안현민 필리핀 EPS센터장은 "시범사업 선발자에게 한국어 집중교육을 실시해 기초적 언어 생활을 습득하게 하고 입국 후 직무교육과 안정적 가정 내 근로 개시를 할 수 있는 기틀을 제공하는게 주 목적"이라며 "케어기버가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동시에 필리핀에도 기여하는 등 양국에게 윈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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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필리핀)=조규희 기자 playingj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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