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09 (월)

"연금 끊기면 안 돼" 부모 시신 방치한 중년 아들... 일본 '8050 문제'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80대 부모가 50대 자식 부양' 문제
고령 부모 사망해도 장례식 안 치르고
시신 방치하며 생활하다 적발 잇따라
전문가 "사회적 고립 방지 노력 필요"
한국일보

고령 부모가 사망했는데 동거하던 자녀가 장례도 치르지 않고 시신을 유기하거나 방치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일본 전역에서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직접적 관계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7일 새벽, 일본 니가타현 니가타시 아키하구에 거주하는 66세 남성(무직)이 경찰에 체포됐다. 동거하던 90대 어머니가 같은 달 초 사망했는데도 신고를 하거나 장례를 치르지 않고 시신을 방치한 혐의다. ‘이웃에 살던 여성이 최근 보이지 않는다’는 신고를 받고 찾아간 경찰이 발견한 시신은 1층 방 안에 방치돼 이미 부패하고 있었다.

#지난해 10월엔 아버지(사망 당시 91세) 시신을 집에 방치한 혐의로 이시카와현 노노이치시의 65세 남성이 체포됐다. 이미 2월에 사망한 아버지의 시신은 옷을 입은 채로 백골화했다. 아들은 “연금을 받지 못하면 (경제적으로) 곤란해질 것 같아” 시신을 방치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직인 그는 아버지의 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고령 부모가 사망했는데 동거하던 자녀가 장례도 치르지 않고 시신을 유기하거나 방치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일본 전역에서 잇따르고 있다. 일본 언론은 생활 능력이 없는 중·장년 자녀를 고령의 부모가 부양하는 ‘8050 문제’가 배경에 있다고 진단한다.

시체 유기범 검거, 중장년층에서 급증


지난 16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일본 경찰청 자료를 인용해, 시체 유기 사건으로 검거된 사람의 수가 최근 40대 이상 중장년층에서 증가하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검거 인원은 △40대 19명 △50대 52명 △60대 31명 △70세 이상 24명으로, 2014~2023년 평균(△40대 14.6명 △50대 26.3명 △60대 18.2명 △70대 12.2명)에 비해 급증했다. 마이니치에 보도된 사례만 추려도 지난해에만 20명이 넘는다.
한국일보

일본 '시체 유기 혐의' 연령별 검거 건수(40대 이상). 일본 경찰청(마이니치신문 재인용)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체포된 사람들은 대부분 40~60대 무직자였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시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사람과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등을 유기 이유로 진술했다고 한다. 사건의 배경에 일본 특유의 현상인 ‘8050 문제’가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8050 문제란 80대 고령 부모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인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것을 뜻한다. 2019년 6월 전직 농림수산성 사무차관 구마자와 히데아키(76)가 무직 아들(44)을 살해하는 사건이 일본 사회 전역을 놀라게 한 후 더 주목받았다. 이전부터 백수이면서 폭력적 성향이 강한 아들의 모습을 비관했던 구마자와는 이웃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아들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취업 빙하기 세대 상당수, 부모가 부양


8050 문제의 기원은 1990년대 중반부터 약 10년간 계속된 ‘취업 빙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 일본은 일손 부족으로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가 계속되고 있지만 버블 경제 붕괴 후 취업 빙하기 세대는 취업에 실패하고 결혼도 하지 못한 채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아예 집에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시간이 지나 부모가 80대, 자녀가 50대가 됐을 때도 이들은 생활 능력을 갖지 못했다.

취업 빙하기 세대가 아니더라도 아직 정년이 되지 않은 중장년기에 갑자기 실직하는 경우 경제력을 잃고 부모 집에 들어가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노인 빈곤이 심각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일찍이 고도성장기에 집을 사고 부를 축적한 고령자가 많아, 자녀보다 부모가 더 잘 사는 경우가 꽤 있다.
한국일보

고령 부모가 사망했는데 동거하던 자녀가 장례도 치르지 않고 시신을 유기하거나 방치하다 적발되는 사건이 일본 전역에서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직접적 관계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모의 경제력과 돌봄에 의존해 지내던 자식들은 부모가 사망하면 장례를 치를 능력조차 없어 시신을 방치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유일한 생계 수단인 부모 연금이 끊길까 봐 의도적으로 사망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8050 문제란 신조어를 만든 오사카부 도요나카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국장인 가쓰베 레이코는 마이니치에 “부모 시신 유기 사건은 8050 문제의 당사자 가족이 도달한 최종 지점”이라며 “사회적 고립을 상징하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실태 파악과 지원 나서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각부가 2019년에 발표한 ‘생활 상황에 관한 조사’에서는 40~64세인 은둔형 외톨이의 수가 61만3,000명으로 추정됐는데, 지난해 실시된 다른 조사에선 이 숫자가 84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조사가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중장년 당사자가 증가하고 있는 실태를 시사한다.

일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지원을 위해 나서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해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은둔형 외톨이 및 이를 부양하는 가족에 대한 첫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올해 대응 매뉴얼을 책정하고, 이를 각 지자체 상담 창구에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8050 문제에 정통한 아이치교육대학의 가와키타 미노루 준교수(사회학)는 마이니치에 “시체 유기 사건뿐 아니라 부모가 질병으로 입원한 후 자녀가 집에 홀로 남겨지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며 “사회적 고립 방지의 관점에서 볼 때, 만약의 경우 SOS를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