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왼쪽)와 정점식 정책위의장이 지난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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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왜 갑자기 자진 사퇴를 결심했을까. 정책위의장 인선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친정체제’ 구축 가늠자로 여겨진 만큼 사안이 마무리된 뒤에도 구체적인 사퇴 과정과 평가를 두고 당내는 소란한 분위기다. 한 대표측은 당초 정 의장이 사의를 밝히면 유임하는 안도 검토했으나, 대통령실 의견에 굽힌 것으로 해석될 상황이 되자 ‘교체’ 의중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독대한 지난달 30일 오전부터 지난 1일 오후 정 의장의 사퇴 회견까지 3일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날짜별로 정리했다.
7월30일···정진석 실장의 ‘유임’ 의견에 혼란
지난달 30일 한 대표와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에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12시30분까지 1시간30분간 만났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배석했다. 한 대표가 정 정책위의장 인선 논란을 풀기 위해 먼저 요청한 자리였다. 윤 대통령을 만나고 온 한 대표는 표정이 밝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당직 인선과 관련해 “당대표가 알아서 잘해달라”고 했는데, 한 대표는 이를 윤 대통령이 인선 전권을 줬다고 본 것이다.
같은 날 저녁 한 대표는 정진석 실장, 홍철호 정무수석, 추경호 원내대표와 만찬을 했다. 정 실장과 홍 수석은 한 대표에게 정 의장을 유임하면 어떠냐는 의견을 전했다. 삼고초려해 정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한 추 원내대표도 유임 의견이었다. 정 의장은 윤 대통령과 검사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대표적인 친윤계로 분류된다.
한 대표 측은 당혹스러웠다고 한다. 한 대표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 실장 측에서는 대통령이 전한 메시지 중에 ‘의견 많이 듣고 이 사람 저 사람 포용하라’는 메시지에 방점을 뒀다”며 “한 대표가 대통령에게 듣고 온 얘기와 다른 결의 얘기가 나오는 희한한 상황”이라고 했다. 한 친한계 의원은 “윤 대통령이 한 대표 앞에서 차마 못했던 말을 정 실장이 대신 전한 게 아니었겠냐”고 해석했다.
7월31일···한 대표측, 정점식 유임 카드도 ‘만지작’
지난달 31일 오후 2시쯤 한 대표와 정 의장이 티몬·위메프 사태 대책 보고차 면담했다. 한 대표는 이 자리에서 정책위의장 교체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한 대표는 정 의장에게 “우리 당을 새롭게 변화시키고 싶다. 그렇다면 새로운 인물과 함께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냐”라고 말했다. 이에 정 의장은 자신의 거취를 한 대표에게 일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오후 3시쯤 서범수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당대표가 임명권을 가진 모든 당직자에게 일괄 사표를 받겠다고 밝힌다.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이때까지만 해도 한 대표 측은 정 의장이 일단 사표를 내면 다시 그를 정책위의장을 기용하는 카드도 염두에 둔 것으로 전해졌다. 여론의 추이를 보고 판단해보자는 것이 한 대표 생각이었다고 한다.
8월1일···사퇴 기자회견 전 김상훈 낙점
정점식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오른쪽)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동훈 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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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표 측이 당직자 일괄 사퇴 카드를 꺼내든 만큼, 정 의장이 사의를 표할지 여부에 여론의 관심이 쏠린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 의장은 지난 1일 오전 9시에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그대로 참석했다. 전날 서 사무총장의 일괄 사퇴 주문에 홍영림 여의도연구원장, 김종혁 조직부총장 등 전임 지도부 당직자들은 사의를 밝히고 불참했다. 그는 “전 발언하지 않겠다”며 이례적으로 모두발언을 거부했다. 사실상 사퇴 요구를 거절한 것으로 해석됐다.
같은 날 오전 10시30분쯤 지난달 30일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정 의장 유임 의견을 전한 것이 경향신문 보도로 알려졌다. 한 대표 측은 언론보도가 나온 뒤 정책위의장 교체 결심을 확고히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한 친한계 의원은 “유임하면 용산 요구에 응하는 그림처럼 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1시쯤 친한계 핵심 관계자는 김상훈 의원 사무실을 찾아가 김 의원에게 정책위의장을 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 오후 3시쯤 한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인선은 당대표 권한”이라며 “우리 당이 변화해야 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신속히 보여달라는 지난 전당대회의 당심과 민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교체 의사를 공식화했다. 같은 날 오후 5시10분 정 의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이같은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교통정리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당무개입 논란이 더 커지기를 원치 않는 용산이 오후에 부지런히 움직였을 것이라고 복수의 친한계 인사들은 말했다.
득과 실···“윤 대통령 완패” vs “정치력 부재”
한 대표는 윤 대통령과의 인선 힘겨루기에서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성태 사람과사회연구소 연구실장 전날 CBS 라디오에서 “대통령의 완패”라며 “당대표가 대통령의 뜻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내용들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자기 뜻을 관철시킨 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한 대표의 정치력 부족이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다.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전날 CBS 라디오에서 “대표가 될 확률이 굉장히 높았다면 사무총장이나 정책위의장 정도는 미리 그림을 갖고 있다가 당대표 되는 다음날 발표를 속전속결로 했더라면 윤한 갈등이네 뭐네 없이 갈 수 있었을 텐데 정치력이 조금 아쉽다”고 평가했다. 진 전 장관은 TK 출신인 김상훈 의원을 발탁한 것에 대해서도 “(한 대표가) 변화, 민심의 요구에 부응, 포장은 그렇게 하셨는데 과연 김 신임 의장이 부합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수도권 얘기도 나왔는데”라고 말했다.
친윤계인 장예찬 전 최고위원도 지난 2일 YTN 라디오에서 “물밑에서 조율하고 끝냈어야 되는 건데 이걸 일주일 동안 이 씨름을 하게 만들고 결국 사무총장에 이어서 당 대표까지 (정책위의장에게) 직접 물러나달라라는 메시지까지 냈다”며 “정치력 부재가 아닌가”라고 말했다.
유설희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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