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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모두 팬덤정치에 뛰어든다면 [강준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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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3년 8월17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검찰 소환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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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 전북대 명예교수



국내에서도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미국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최근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라는 후속작을 내놓았다. 제목만 들었을 땐 팬덤정치에 관한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팬덤은 정당을 장악하려는 강성 당원들의 온상으로, ‘소수 독재’를 가능케 하는 정치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국엔 적용되기 어려운 미국의 특수성을 민주당·공화당 중심으로 다룬 책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공화당은 ‘단 한번’ 더 많이 득표했지만, 공화당 대선 후보들은 ‘세번’이나 대통령이 되었다. 한 표라도 이기면 선거구의 선거인단 전체를 확보하는 선거인단 제도 때문이다. 모든 주에 똑같은 상원의원 숫자를 배정한 상원 제도는 미국 인구의 20% 미만을 차지하는 인구수가 낮은 주들만으로도 상원 과반을 차지할 수 있게 한다. 국민이 뽑지 않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대법관들은 종신토록 재직하면서 여론이나 의회의 결정에 상관없이 법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이 제도들은 민주주의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헌법에 기반을 둔 것으로 극단적 갈등을 막고 다수의 횡포를 견제하고 정치적 소수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됐지만, 이젠 낡았다. 그러니 선거인단 제도 폐지, 전국적인 보통선거 실시, 종신직인 대법원 판사에 대한 임기 제한, 헌법 수정을 위한 비준 요건 완화, 투표를 쉽게 할 수 있는 투표권 보장 등을 하자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그런 일은 미국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한국형 ‘소수 독재’인 팬덤정치에 주목하자. 정치평론가 이철희는 최근 한겨레 칼럼에서 팬덤정치에 대해 이런 진단을 내렸다. “팬덤정치가 우리 정치의 뉴노멀이 됐다. 팬덤 구축이 정치적 성공의 교리가 됐다. 포퓰리즘, 정서적 양극화, 팬덤정치는 패키지로 움직인다. 서로가 서로를 강화하고, 자극하고, 지원한다. 결과는 상대에 대한 혐오와 적대, 나아가 부정과 배제다.”



탁견이다. 그래서 힘이 빠진다. ‘정치적 성공의 교리’가 된 팬덤정치를 무슨 수로 극복할 수 있단 말인가. 팬덤정치 옹호자들의 주장처럼, 비판자들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시대착오적인 고정관념에 빠진 건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현 팬덤정치 체제하에선 “10만~20만명 상당의 팬덤 당원만 있으면 당권 장악은 물론 대선 후보가 될 수 있게 됐다.”(박상훈) 이마저 시대 흐름으로 긍정하란 말인가?



정치팬덤은 연예인 팬덤과는 달리 수명이 짧다. 연예인 팬덤은 오직 연예인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갈 수도 있지만, 정치팬덤은 팬질을 하는 대상의 권력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권력이 사라지면 팬덤도 사라진다. 팬덤이 원하는 건 권력감정, 즉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의식,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막스 베버)이기 때문이다.



전 민주당 의원 표창원은 “극단적, 일방적으로 자기편에 유리한 선동을 하며 금전적 이익을 챙기는 언론이나 유튜버 등 소위 ‘진영 스피커’들”을 가리켜 ‘정치군수업자’라고 했다. 팬덤과 공생 관계인 정치군수업자의 속성은 기회주의다. 권력 교체에 따라 변신하지 못하고 이전 권력을 계속 옹호하면 고객이 떨어져 생업을 잃게 된다. 호구지책에 초연할지라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는 진영의 주류로 남고 싶다면 빨리 말을 갈아타야 한다. 새로운 권력자를 돋보이게 할 담론에 집중해야 한다. 진영 내 권력이 교체되는 과도기엔 상대 진영 공격에 집중하는 게 안전하다. 증오·혐오를 부추기는 열변만 잘 토해내면 궤변일수록 팬덤이 더 열광한다.



팬덤정치는 이상한 게임이다. 팬덤정치 비판을 완전히 무시하면서 팬덤 구축에 모든 걸 거는 정치인만 재미를 보는 불공정 게임이다. 이걸 중단시킬 수 없다면,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역설한 ‘과잉 순응’ 전략은 어떤가. 이는 바꾸고자 하는 시스템의 메커니즘을 흉내 냄으로써 저항하는 전략이다. 거울처럼 시스템의 논리를 흡수하지는 않으면서 복사하고 의미를 반영시킴으로써 그 논리를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이 전략에 따른다면, 모든 정치인은 당당하게 팬덤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 보좌진 구성부터 팬덤 전문가 위주로 하면서, 다양한 재미와 의미로 팬들을 모셔야 한다. 사소한 다수를 중시하는 롱테일 전략을 써야 ‘증오 마케팅’을 하지 않는 다른 성격의 팬덤도 가능해지고, 전반적인 정치인-유권자 상호 소통의 양과 질도 향상된다. 그 어떤 시도와 실험을 하건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게 없다면 무엇을 망설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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