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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원내대표 이모저모

원내대표 '밥상 소통'도 끊겼다…대화 절벽, 여의도 정치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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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7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6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외에 추가로 방송4법 심사 보고를 하자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찾아가 항의하고 있다. 왼쪽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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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치가 무너지고 있다. ‘야당 입법 강행→여당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맞대응→야당 강제 종료 및 단독처리→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이어진 악순환에 여야 간 정치의 본령이란 대화와 타협은 이미 실종된 지 오래다. 특히 소통의 마지노선인 여야 원내대표조차 서로 흉금을 터놓지 못할 정도로 불신의 골이 깊은 상태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5일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점심을 함께한다. 세 사람이 식사를 함께하는 건 6월 5일 우 의장 선출 이후 두 번째다. 우 의장 취임 이후 한 달 넘게 같이 밥 한술 뜨지 못했던 세 사람은 지난달 22일 첫 식사를 함께하며 ‘매주 월요일 점심’을 정례화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약속마저 1주일을 채 넘기지 못했다. 의사일정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순직해병 특검법 재표결과 방송 4법 처리를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선 여야 원내대표가 식사 한번 제대로 못 하는 현실이 지금의 여의도 정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다. 양당 관계자에 따르면 두 사람은 6월까지만 해도 비공개로 회동하는 등 소통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달 4일 민주당이 의사일정 합의 없이 순직해병 특검법을 단독 처리하면서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됐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비공개로 간간이 이어져 왔던 여야 원내대표 간 양자 회동도 이 무렵부터 거의 끊겼다”고 전했다. 국민의힘 배준영ㆍ민주당 박성준 원내수석이 소통 채널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서로 간 일방 통보의 장이 됐다”(민주당 관계자)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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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3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왼쪽)와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오른쪽)가 강원 고성의 화암사에서 만나 인근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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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앞에선 얼굴 붉히며 언쟁하더라도 뒤에선 미주알고주알 터놓으며 막힌 정국을 뚫어왔던 게 그간 여야 원내대표의 역할이었다. 2015년 박상천 전 민주당 대표가 세상을 뜨자, 과거 여야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로 호흡을 맞췄던 박희태 전 국회의장은 “나는 한 마리 짝 잃은 거위”라며 “우린 공격적 맞수가 아닌 협력적 맞수였다”고 회고했다. 21대 국회 초반이었던 2020년 6월엔 당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원 구성 담판을 위해 강원도 한 사찰에 칩거 중인 주호영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찾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선 추 원내대표가 “원 구성 협상 책임을 지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뒤 백령도 행을 택했는데도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계파색 옅은 민주당 재선 의원은 “다수당 원내대표가 손을 내밀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박 원내대표를 취임 축하 차 방문한 것 외에 한 번도 찾지 않을 것을 두곤 국민의힘에서도 “야당을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영남 중진)이란 말이 나온다.

여야 간 대화 절벽의 본질은 신뢰 상실이라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 인사는 “박찬대 원내대표가 이재명 전 대표의 지시사항만 철저히 이행했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 원내관계자는 “추경호 원내대표가 용산 대통령실의 의중에서 벗어나기 힘든 것으로 보였다”고 주장했다. 서로 상대 원내대표를 겨냥해 ‘협상 권한이 없다’고 비난하고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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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7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해병대원 특검법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중지가 선언되고 종결동의의 건이 상정되자 논의하고 있다. 오른편에서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의장석에 몰려가 항의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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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 말은 갈수록 험해지고 있다. 지난달 25일 순직해병 특검법 부결 직후 국회 본회의장 설전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이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자 추 원내대표가 우원식 의장에게 “합의되지 않은 것”이라며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박 원내대표는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특검법이 부결되면 15~20분 정도 규탄대회를 하겠다고 미리 말을 했다”며 “자꾸 거짓말하는 것이 윤석열 정권의 상징인가”라고 비꼬았다. 이에 배준영 국민의힘 원내수석은 “이 신성한 곳에 나와 거짓말을 하신 것이 더 유감”이라며 “여러분 당 대표의 지지율이 솟아오를 때 여러분의 지지율은 땅으로 꺼지고 있다”고 맞받았다.

전문가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 전당대회 흐름상 이전보다 더 강성인 지도부가 나타날 것”이라며 “이 전 대표 사법리스크를 지적해오던 국민의힘의 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반면에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 전당대회 종료를 계기로 원내 채널 외에도 한동훈-이재명 당 채널을 가동해 채널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양당 대표 입장에서도 협상력과 정치력을 보여줄 좋은 명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중재안만 내도 융단 폭격…“큰 선거 없으니 여야 마구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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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장이 29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 4법'인 방송문화진흥회법(방문진법) 필리버스터 진행중 피곤한 듯 눈가를 만지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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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국회가 여야의 ‘대화 절벽’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안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각 진영 내부에서 쏟아내는 비난 탓에 이런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제안했던 방송 4법 중재안이 대표적이다. 우 의장은 지난달 17일 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방송통신위원회설치법 등 개정안과 관련해 “범국민 협의체를 구성하자”고 했다. 대신 국민의힘에는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 중단과 방송통신위원회 정상화를, 더불어민주당엔 입법 강행 중단을 각각 요구했다.

입법부 수장으로서 여야의 강대강 대치를 막기 위한 중재 노력이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받아들일 수 없다”(7월 19일,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여당의 거부를 넘어 우 의장이 몸담았던 민주당으로부터 거센 비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8·18 민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최고위원 후보들은 “1분 1초가 급한데, 무슨 중단이고 원점이냐”(한준호), “지금은 싸워도 부족할 판”(민형배)이라며 앞다퉈 우 의장을 성토했다. 민주당에선 “강성 지지층인 ‘개딸’에 구애하느라 국회의장으로 당연히 해야 할 중재 시도마저 비난 대상으로 삼았다”(재선 의원)는 씁쓸한 반응이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내건 ‘순직해병 특검법’의 제3자 특검 추천안도 여권에서 비슷한 대접을 받았다. 한 대표가 7·23 전당대회 출마 선언 때 “진실 규명을 할 수 있는 제3자 추천 방식 특검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히자 국민의힘 비(非)한동훈계가 ‘배신자 프레임’을 꺼낸 것이다. 당권 경쟁 과정에서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과) 20년 동안 키운 인간관계를 하루아침에 배신해도 되느냐”고 했고, 윤상현 의원은 “절윤(絶尹)이 된 배신의 정치는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다 보니 당론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개인 의견을 제시하는 건 22대 국회의 금기처럼 돼버렸다. 곽상언 민주당 의원이 검사 탄핵 추진 국면에서 “찬반을 판단할 충분한 근거가 없다”며 기권표를 행사했다가 강성 지지층의 반발에 못이겨 원내부대표직에서 물러났던 게 바로 그런 경우다. 민주당 수도권 의원은 “당이 무리하게 추진하는 측면이 있더라도 윤석열 정부의 폭거가 이를 압도하니 단일대오에서 이탈할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반대로 국민의힘에선 “민주당의 입법 폭주가 워낙 극심하니 다른 얘기를 꺼내기 쉽지 않다”(초선 의원)는 말이 나온다. 여야의 강성 대치 악순환이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의 입마저 막아버린 셈이다.

당장 큰 선거가 없는 정치 환경도 양당의 극단적 질주를 부추긴다는 분석도 있다. 국회 고위 관계자는 “선거라도 있으면 벼랑 끝으로 가다가도 여론에 못 이겨 협상장에 나오기라도 할 것”이라며 “지금은 중도층 눈치를 볼 이유가 없으니 여야 모두 막 지르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기정·강보현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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