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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세계 1,335위→올림픽 금메달…파리에서 방점 찍은 안세영의 낭만적인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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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허빙자오 결승서 제압
파리 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
1996년 방수현 이후 28년 만의 쾌거
경기 후 대표팀 은퇴 암시 충격 발언
"부상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에 실망"
사격 조영재는 25m 속사권총 은메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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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이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중국의 허빙자오와의 결승전에서 공격을 시도하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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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배드민턴 간판 안세영(삼성생명)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낭만적인 여정의 방점을 금메달로 찍었다. “파리에서 낭만 있게 끝내겠다”는 시나리오대로 이뤄진 최고의 결말이다. 한국 사격도 은메달 1개를 추가해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안세영은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드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중국의 허빙자오를 2-0(21-13 21-16)으로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배드민턴 여자 단식 선수가 금메달을 따낸 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이후 28년 만이다. 한국 배드민턴 전체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혼합 복식 이용대-이효정 이후 처음이다.

안세영은 이번 금메달로 한국 선수단에 파리 올림픽 11번째 금메달도 선사했다. 사격에서는 조영재(국군체육부대)가 이날 남자 25m 속사권총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1960년 로마 대회부터 출전한 속사권총에서 한국 사격이 처음 명중한 메달이다. 이로써 금메달 3개와 은메달 3개로 대회를 마무리한 한국 사격은 2012 런던 대회(금3·은2)를 넘어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을 찍었다.

부상 신음하던 안세영을 깨운 단어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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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부상 투혼으로 금메달을 따낸 안세영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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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도쿄 올림픽 때 8강에서 천위페이(중국)에게 져 일찍 짐을 쌌던 안세영은 3년 새 훌쩍 성장해 세계랭킹 1위 자격으로 파리 올림픽을 준비했다. 건강한 몸 상태라면 객관적인 실력은 단연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통증이 걱정거리였다. 지난해 10월 2관왕을 달성한 항저우 아시안게임 당시 무릎을 다쳤는데도, 계속 참고 뛰느라 부상 후유증이 컸다. 짧은 시간 안에 좋아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통증에 적응하면서 견뎌야 했다. 부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워낙 큰 탓에 “정말 땅굴을 많이 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땅굴을 파던 안세영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단어는 ‘낭만’이다. 안세영은 “트레이너 선생님이 나를 부상에서 끌어내주기 위해 많이 쓰는 말이다. 매일 운동을 설레면서 시작하고 낭만 있게 끝내면 그 하루도 잘 보낸 것이라는 말을 해줬다”며 “올해 부상으로 시작했지만 올림픽을 낭만 있게 잘 끝낸다면 ‘올 한 해 잘 살았다’는 말을 스스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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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 무릎에 테이핑을 한 안세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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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안세영의 오른 무릎에는 테이프가 감겨 있었지만 금메달을 향한 투지를 불태웠다. 몸을 던져 상대 공격을 받아내고, 상대 허를 찌르는 공격을 성공시켜 낭만 드라마를 ‘해피 엔딩’으로 장식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포효하는 안세영 특유의 승리 세리머니는 쿠키 영상에 가까웠다.

하지만 안세영은 경기 후 대표팀 은퇴를 암시하는 충격 발언을 했다. 그는 "생각보다 부상이 심각했다. 이건 나을 수 없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한테 많은 실망을 했다"며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함께 가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계속 배드민턴 발전을 위해, 나의 기록을 위해 해나가고 싶지만 어떻게 해줄지는 잘 모르겠다. 앞으로 배드민턴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이든 다 견딜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2017년 여중생 국가대표 발탁, 혜성처럼 등장


2017년 중학교 3학년 신분으로 현역 국가대표와 성인부 언니들을 제치고 태극마크를 달았던 ‘천재 소녀’는 이제 그 자체로 한국 배드민턴의 살아 있는 역사가 됐다. 지금의 안세영을 만든 건 배드민턴 동호인인 아버지 안정현씨, 어머니 이현희씨의 영향이 크다. 안세영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배드민턴 동호인인 부모를 따라 체육관에 가서 처음 라켓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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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국가대표 시절의 안세영.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렸을 땐 좀 뚱뚱해서 건강도 생각할 겸 시작했는데, 재미를 붙였다”고 했던 그가 두각을 나타낸 건 초등학교 5학년인 2013년부터다. 복싱 선수 출신 아버지의 DNA를 받아서인지, 그해 펼쳐진 원천 요넥스코리아주니어오픈 여자단식 우승을 시작으로 2017년까지 5년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이후 국내외 주니어 무대를 평정하고 한국 배드민턴 사상 최초로 중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에 뽑혔다.

2018년 세계랭킹 뒤에서 두 번째부터 시작


성인 국가대표가 된 이후에는 꾸준히 성장했다. 2018년 2월 1,335위로 세계랭킹에 처음 진입했고, 2019년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신인상을 받았다. 2021년 11월엔 여자단식 ‘톱10’, 지난해 8월엔 세계 1위에 등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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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진천선수촌에서의 안세영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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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은 “처음에 1,335등, 뒤에서 두 번째부터 시작해 비교적 순탄하게 올라왔다”고 지난 과정을 돌아봤다. 국제 종합대회도 처음엔 아픔을 겪었지만 시련을 딛고 일어서 시상대 맨 위에 올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1회전 탈락, 2020 도쿄 올림픽 8강 탈락을 각각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2관왕(단체전·개인전), 2024 파리 올림픽 금메달로 바꿨다.

4년 후에도 20대 중반...전성기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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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랭킹 1위 등극 후 진천선수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안세영.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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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세계를 평정한 안세영의 최대 무기는 아직도 젊다는 점이다. 라이벌 천위페이와 야마구치 아카네(일본)는 4년 뒤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때 30대를 바라보지만 안세영은 20대 중반에 접어든다. 김학균 감독은 “여자단식 선수의 전성기는 2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라는 걸 비춰볼 때 세영이는 경쟁자들보다 훨씬 더 오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 =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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