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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베이징대 한국어학과 미달, 중국서도 “충격”…취업난·관계 악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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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해 6월 중국 난징에서 고교생 수험생들이 ‘가오카오’ 시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난징/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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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최고 명문대인 베이징대학의 한국어학과가 올해 학사 신입생 모집에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추가 모집을 했다. 어학 관련 명문 대학인 베이징어언대는 내년도 한국어 통역·번역 석사 과정 모집을 중단했다. 비인기 어학 계열 취업난과 한·중 교류 감소 등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려는 학생 수가 줄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5일 중국 대학 입시 사정을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베이징대는 지난달 초 한국어학과 학사 신입생 모집을 했으나 정원을 채우지 못해 추가 모집에 나섰다. 이 관계자는 “지난달 중순 일부 성에서 베이징대 한국어학과 신입생 추가 모집이 진행됐다”며 “한국어학과와 러시아어학과가 미달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베이징대 한국어학과의 학사 과정은 총 60명으로, 해마다 15명의 신입생을 뽑는다. 이 가운데 10명 안팎을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해당하는 ‘가오카오’(高考) 점수를 바탕으로 선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의 한 입시정보 업체도 지난달 18일 웨이신(위챗) 공공 계정을 통해 관련 상황을 전했다. 이 업체는 “올해 베이징대의 추가 모집 명단에 한국어와 러시아어 등 전공과목이 포함됐다”며 “해당 전공은 지원자가 부족했거나 점수가 부족해 추가 모집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중국은 지난 6월 초 ‘가오카오’를 치렀고, 이후 전국 대학들이 신입생 모집에 들어갔다. 중국 대학은 가을 학기에 새 학년을 시작한다.



중국 최고 대학이자 세계적인 명문대로 꼽히는 베이징대가 학사 신입생 추가 모집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신 등에서는 관련 내용을 소개하며 “충격”, “놀랍다” 등의 단어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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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대학은 한국어 관련 석사생 모집을 중단했다. 어학 관련 명문 대학인 베이징어언대학은 지난달 내년도 한국어 통·번역 석사생 모집을 하지 않는다고 통지했다. 이 대학은 내년도에 한국어뿐만 아니라 러시아어 번역과 일본어 통·번역, 독일어 번역, 스페인어 번역 전공의 석사생 모집을 함께 중단했다. 이 대학은 이들 전공의 석사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는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중국에서 한국어 전공 수요가 감소하는 것은 심각한 청년 취업난과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 한·중 관계의 냉각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우선 중국은 수년간 이어진 경기 침체로 청년 취업난이 심각하다. 한국어와 러시아어 등 이른바 비인기 언어 전공자는 취업이 더욱 어렵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베이징대 졸업생은 “영어는 좀 다르지만, 한국어나 러시아어 등 소수(비인기) 어학 계열은 취업이 쉽지 않다”며 “소수 어학 계열을 전공할 경우 법학이나 금융, 언론 등을 복수 전공해야 해 학생들이 점점 이 분야 전공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이나 군대, 철도, 전기 등 취업이 쉬운 전공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는 점점 커지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은 가오카오 고득점자들이 전기, 철도 등 취업에 유리한 기술전문 대학에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도 청년들의 비인기 언어학과 진학을 막는 요인이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머잖은 미래에 번역이나 통역 업무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중 관계의 냉각과 양국 간 경제 교류의 급격한 감소도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꼽힌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전년 대비 19.9% 감소했고, 중국으로부터의 수입도 전년 대비 7.6% 줄었다. 지난해 중국에 대한 한국의 투자도 전년보다 78.1%나 줄어든 18억6700만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에서 30년 가까이 거주한 한 교민은 “베이징 교민 수가 4~5년 사이 10만명에서 1만명으로 10분의 1로 줄었다”며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이 줄고, 투자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중국 학생과 학부모들이 신중하게 진로 선택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한·중 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과 이에 대한 미국의 강한 견제로, 서방과 중국 간의 경제적 단절이 심화되고 있고, 한·중 무역도 그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 또 중국 경제 정책의 무게추가 수출이 아닌 내수 쪽으로 이동하면서 비인기 언어 전공자에 대한 수요는 더욱 감소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중국어를 배우는 수요가 크게 줄었다. 2010년대 말부터 대형 중국어 학원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2020년대 들어서는 대학 중국어 관련 학과의 폐과나 석사생 모집 중단이 이어졌다. 서울 삼육대가 2021년 중국어학과와 일본어학과를 ‘항공관광외국어학부’로 통폐합했고, 한국외대 용인 캠퍼스는 지난해 중국어·영어·일본어 통번역학과 등 13개 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교육통계서비스를 보면, 2018년 전체 대학의 중국어 학과 입학생은 4014명이었지만, 2022년에는 2727명으로 32% 감소했다. 2021년에는 공립 중고교가 신임 중국어 교사를 한 명도 뽑지 않았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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