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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후배 부부 울린 청첩장 문구…글쓰기 원동력은 ‘칭찬’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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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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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은 참 많다. 사무실에는 기안문을 쓰는 회사원이 있고, 학교에는 리포트를 쓰는 학생이 있다. 기사를 쓰는 기자가 있고,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있고, 광고 문안을 쓰는 카피라이터도 있다. 광고회사에 새로 들어온 신입사원들에게 교육할 때,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설명하면서 “사람을 향합니다” 일곱 글자. “쓱” 한 글자. “슈퍼 노멀” 네 글자. “반도체는 이천의 특산품입니다” 열 세 글자. 아마도 글을 쓰는 걸로 밥벌이 하는 사람 중에 글자수 대비 연봉으로는 카피라이터가 꽤 돈을 많이 버는 편일거라며 농담을 해왔었다. 글쓰기와 밥벌이와 연봉이라니. 이런 자조적 농담은 글쓰기에 대해 말하기가 부끄러운 나의 방편이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방편을 더 부끄럽게 만드는 글쓰기에 대한 대가의 표현도 있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에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밤에는 글을 쓰지 말자. 밤에는 밤을 맞자.”(김훈 에세이 ‘연필로 쓰기’ 중에서)





자아가 반영되는 지적 활동





같은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왜 이렇게 쓰지 못할까? 선배들은 어떻게 잘쓰게 되었을까? 시샘과 연구, 자학과 공부의 시간을 꽤 오랜 시간 보내왔다. 선배가 되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래라 저래라 후배들에게 참견도 꽤 해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알게 됐던 것들을 말해보려고 한다.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라니. 내가 뭘 안다고.



어쭙잖은 생각이지만, 글쓰기를 잘하게 되는 가장 큰 원동력은 칭찬인 것 같다. 글쓰기라는 작업은 자신의 자아가 반영되는 지적 활동이기 때문에 글에 대한 비난은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받아들여져 상처받기 쉽다. 반대로 자신이 쓴 글을 누군가 잘 읽어주었을 때, 그것 역시 글이 아니라 자아에 대한 인정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어 굉장히 기쁘고 뿌듯해진다. 그래서 더 잘 쓰고 싶은 욕망이 강해지면서 실력이 늘게 된다. 나의 경우엔 청첩장 쓰기가 그랬다. 카피라이터가 되고 나서, 어느 날인가 후배가 자신의 청첩장을 부탁해왔다. 선배가 카피라이터니까 아무래도 이런 걸 잘 할 것 같다는 이유였다. 일단 해주겠다고 대답하고 기성 청첩장들의 문구들을 좀 살펴봤는데, 너무 보편타당한 얘기들 뿐이라서 선뜻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혼도 연애도 좀 힘들게 한 편이었는데, 두 사람의 연애사에 대해 좀 알고 있던 나는 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보통 사람보다 조금 힘들었던 두 사람의 연애를 언덕을 넘는 일이었다고 보고, 앞으로의 결혼 생활은 숲처럼 넓고 편안할 거라는 덕담 비슷한 청첩장을 써줬는데, 힘든 결혼 준비를 하고 있던 후배와 후배의 남편이 그걸 읽으며 말 그대로 울어버렸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지금도 가끔 만나면 두 사람은 그 청첩장 얘기를 꺼낼 때가 있는데, 나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나의 표현과 어쭙잖은 솜씨가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글쓰기라는 활동은 꽤 매력적인 일이다. 그러니 아이가 혹은 가까운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보여주면 지적보단 칭찬할 준비를 하시라.



그런데 청첩장 쓰기에서 글쓰기에 대해 생각해볼 또 하나의 중요한 공부가 있다. 내가 청첩장을 써준다는 소문이 퍼지자 선후배들이 청첩장을 부탁하는 일이 꽤 자주 있었다. 두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경우엔 내가 보기에도 반듯한 글이 써지는 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청첩장은 소위 알맹이가 없는 글쓰기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걸 다시 생각해보면, 글을 잘 쓰려면 글을 쓰는 대상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거나 알 만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잘 아는 대상을 표현하는 글은 부담감 때문에 쓰기가 어렵지만, 오래 고민한 글이기에 좋은 글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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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고민한 ‘글쓰기’는 자녀 이름짓기





살면서 가장 많이 고민했고 부담스러웠던 글쓰기는 우리 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였다. 큰 애가 태어나자 양 집안의 할머니들은 부랴부랴 움직였다. 서로 친한 친구 사이였던 두 분은 함께 용하다는 작명소를 돌아다니며 큰 애의 이름을 받고 있었는데, 나와 아내는 아이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고 싶었다. 큰 아이는 다스릴 ‘리’자와 현명할 ‘현’자를 써서 이현이, 작은 아이는 다스릴 ‘리’에 편안할 ‘안’을 써서 이안이. 큰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아내와 나는 함께 사회 초년생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의 일상은 우리 앞에 닥친 문제와 그것을 서툰 경험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매일매일 우리가 조금 더 현명했다면 인생에 놓인 문제들을 더 잘 해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고민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에 아이가 태어나자 우리는 아이가 돈 많은 사람이나 인기 많은 사람보다 현명함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째가 태어났을 땐 우리가 부모로서 좀 자랐는지 현명한 것 보다는 사실은 편안하고 행복한 게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하며 이안이로 지었다. 평생을 살아갈 아이들의 삶의 방향성을 이름에 담아 기원한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부모로서 아이의 삶에 중요한 것들을 생각해보고 그 수많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고심해서 고르는 일은 어렵고 힘든만큼 뿌듯하고 기쁜 일이기도 했다. 일본의 한 카피라이터는 아이의 이름을 지으면서 “브랜드 네이밍의 어려움”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이의 이름 짓기를 글쓰기로 치환해 본다면, 이름의 뜻을 생각하는 일은 대상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을 정리하는 일이고, 이름인 한자어를 고르는 일은 단어를 고르면서 문장을 아름답게 다듬는 일에 가깝다. 둘 다 글쓰기엔 중요한 일이지만, 문장을 다듬는 일보단 무슨 말을 할지를 오래 생각하는 것이 좋은 글이 될 확률을 높이는 일인 것 같다.



자, 이제 퇴고를 할 시간이다. 일주일 동안 퇴고를 하는 사람도 있고, 한 번만 가볍게 하는 사람도 있고, 본인이 한 번,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면서 한 번 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퇴고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이면 신선한 글이 약간 텁텁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오래 묵히면 정갈한 글이 되긴 하는데, 뭐랄까 약간 못 쓴 듯한 이상한 문장이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는 법이라. 그냥 너무 잘 쓰려고도 하지 말고, 배운 척하지도 말고.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는 시간을 길게, 쓰는 일은 즐겁게. 그 정도의 마음으로 평생을 살면서 해 나가야 할 글쓰기란 작업을 대하면 어떨까?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낚시든, 악기든, 오토바이든, 세차든, ‘너 좋아하는 게 뭐야?’ 라고 물었을 때 무언가 한가지 서슴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삶이야말로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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