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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빅픽처] '파일럿', 조정석의 여장 투혼과 원맨쇼에도 아쉬웠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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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몇 해 전 개봉했던 애니메이션 영화 '짱구는 못 말려'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소위 권고를 받은 바 있다. 극 중 짱구가 여자친구를 향해 "홍일점이야", "드디어 방위대에도 예쁜 꽃이 피었네"라고 한 말이 문제가 됐다. 방통위는 '홍일점', '예쁜 꽃' 등의 표현이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세상이 달라졌다. 과거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을 표현들이 이제는 문제가 된다. 성 평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성 역할의 고정관념을 타파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우리 실생활은 물론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도 이를 적극 수용하는 분위기다. 어린이 관객이 주 타깃인 애니메이션도 예외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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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개봉해 7일 만에 전국 2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파일럿'(감독 김한결)은 흥미로운 소재로 출발한 코미디 영화다. 회사 내 실언으로 하루아침에 해고당한 파일럿이 재취업을 위해 여장까지 감행하는 설정으로 크고 작은 웃음을 선사한다.

1인 2역을 감행한 조정석의 '코믹 원맨쇼'에 크게 기대고 있는 영화지만 다루고 있는 소재가 그렇게 가볍지 않다. 젠더 이슈를 끌고 와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진다. 휘발되는 웃음 속에서도 생각할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은 '파일럿'의 미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다소 아쉬운 것도 사실이다.

여름 극장가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는 '파일럿'의 호불호를 따져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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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석의 여장 남자 코미디…'원맨쇼'는 통했다

파일럿 한정우(조정석)는 뛰어난 비행 실력으로 TV 프로그램까지 나올 정도로 신임을 얻은 인재다. 그러나 회사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는 재벌 2세를 막기 위해 실언을 해 구설에 오른다. 재벌 2세가 자사 승무원들의 외모를 품평했고, 한정우는 싸늘해진 분위기를 무마하고자 "꽃다발 같은 승무원"이라는 발언을 하고 만다. 이 현장은 누군가의 핸드폰에 기록되고,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진다. 한정우는 여성 차별적 발언을 한 파일럿으로 낙인찍혀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만다.

설상가상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집에서 쫓겨난 한정우는 다달이 나가는 양육비와 대출 이자 등 경제적 압박에도 시달린다. 재취업의 문을 두드리지만 업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가 있어 번번이 면접에서 탈락하고 만다.

어느 날, 한 항공사에서 성 비율에 맞춰 파일럿을 채용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동생의 이름을 빌려 지원서를 낸다. 동생의 도움으로 '한정미'로 변신한 한정우는 덜컥 면접에 통과하고 입사까지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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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일럿'은 미국 영화 '투씨'(1983), '미세스 다웃 파이어'(1994)를 연상케 하는 여장 남자 이야기를 그린 코미디 영화다.

이 작품의 웃음 타율은 한정우와 한정미를 연기하는 조정석의 원맨쇼를 받아들이는 관객의 자세에서 결정된다. 한정우가 여장 남자임을 들키지 않게 고군분투하는 모습 자체가 웃음 포인트기 때문이다.

각 잡고 싱크로율을 따질 관객에겐 허점이 많은 영화이고,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준비가 된 관객에겐 꽤 타율 높은 코미디가 될 것이다.

조정석은 코믹 연기에 능한 배우다. 영화 '건축학개론'(2012)에서 '납득이' 캐릭터로 스타덤에 올랐던 조정석은 코미디 영화에서 특유의 재기와 무표정, 대사를 뱉어내는 리듬감을 통해 말하는 사람은 진지한데 듣는 사람은 웃게 하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왔다. 940만 흥행작 '엑시트'(2019) 이후 5년 만에 코미디 영화로 돌아온 조정석은 '원맨쇼'에 가까운 활약으로 영화를 이끈다.

한정우에서 한정미로 변신한 후 벌어지는 일련의 해프닝들은 '조정석의, 조정석에 의한, 조정석을 위한' 장면들이다. 치마를 입고 아무렇지 않게 '쩍벌'을 하는 모습이라던가, 여자 목소리를 내다가 자기도 모르게 남자 목소리를 내는 장면, 클럽에서 플러팅해 오는 남자를 단번에 응징하는 과격함은 일차원적인 코미디임에도 조정석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확실한 웃음 한 방'으로 탈바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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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웃음을 방해하는 건 한정미가 된 한정우를 아무런 의심의 눈초리 없이 받아들이고, 과장되게 반응하는 주변 캐릭터들이다. 이들의 호들갑이 작위적이라 몰입을 방해한다.

이 영화의 허술함을 따지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여장으로 대기업 채용 절차를 가볍게 통과하는 말도 안 되는 전개라든가 숱한 위기에도 불구하고 동료가 끝까지 변신을 알아채지 못하는 허술함은 어쩔 것인가. 관객은 '그렇다 치고'를 눈감아줄 준비가 됐는데 영화가 자꾸 '감쪽같은 척'을 하는 것이 오히려 어색하게 다가온다.

물론 관객의 시선에는'(아무리 분장을 해도 도저히) 조정석이 여자 같지 않다'라는 외모 평가가 어느 정도 투영돼 있다. '누가 봐도 여자 같지 않은 데 웬 호들갑?'과 같은 반감이랄까. 이 반감은 '넓은 어깨', '근육질 다리', '이상한 목소리' 등 한정미에 대한 외모 평가가 작동했으며, 이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젠더 이슈를 다룬 영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소재의 날카로움, 이야기의 현실성을 따지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서 고정관념과 편견을 발견하게 되다. '파일럿'이라는 영화가 선사하는 흥미로운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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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더 이슈, 시도는 좋았으나…얕은 웃음에 휘발된 깊이

상업 영화에서 젠더 이슈를 다룬 경우는 많지 않았기에 '파일럿'의 주제 의식은 꽤 도발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소재를 다루는 방법과 태도는 아쉬움을 자아낸다.

시의성과 주목도가 높은 젠더 이슈를 영화의 소재로 가져오는 영민함을 보였지만, 이 이슈를 다루는 날카로움은 발견하기 어렵다. 풍자보다는 일차원적인 코미디의 웃음 소재로 활용한다.

'못했다'기보다는 '안 했다'에 가깝다. 감독과 배우가 가벼운 코미디와 묵직한 주제 사이에서 내놓은 절충점이 지금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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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논쟁적이고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이슈인 만큼 영화는 핵심에서 발을 한 발 빼고, '여장 남자 한정우의 한정미 되기'라는 해프닝에 집중한 모습이다. 산발적인 에피소드를 연이어 나열하면서 크든 작든 웃음 잽을 날리는 데 집중했고, 이 구성 안에서 조정석의 원맨쇼가 빛을 발했다.

영화는 직장 사회에서 여성의 애환과 애로사항을 대변하는 인물로 '윤슬기'(이주명)라는 캐릭터를 내세운다. 한정우와 한에어 면접에서 경쟁한 윤슬기는 "남자친구도 없고 결혼 생각도 없다"며 사회생활에서 여성의 핸디캡으로 지적되는 요소를 미리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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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기는 한정우를 제치고 한에어에 먼저 입사했고, 추후 한정미로 변신한 한정우와 함께 특별한 우정을 나눈다. 남녀 사이일 때 경쟁자였던 두 사람은 같은 성(性)으로 재회해서는 연대한다. 윤슬기는 회식 자리에서 '예쁘다'는 말이 왜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에게 불편하고 부당한 평가인지를 상사에게 당차게 말하는 여성이다. 윤슬기의 롤은 한정미의 절친 동료에 그치지 않고 후반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파일럿'을 연출한 김한결 감독은 한정미와 윤슬기의 교감이 한정우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켜보고 인식을 전환하는 계기로 기능하길 의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반부 한정우의 각성은 그 대상과 내용이 명확해 보이지 않는다.

영화 전체를 놓고 봐도 여장 남자 한정우의 애로사항은 부각되지만 여성 한정미의 애환은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파일럿'은 젠더 이슈를 상업 영화에 과감하게 가져왔음에도 그 소재를 얄팍하게 풀어낸 데 그쳤다는 아쉬움도 남긴다.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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