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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 (수)

"1원도 주지마"에 '버럭'…윤석열·김정은 '환장의 콜라보', 언제까지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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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의 수해지원 제안에 강경한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반면 러시아에 대해서는 완곡한 어투로 거절하며 예의를 지켰다. 북한에 1원도 주지 말라는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수해 지원을 하겠다고 하니, 이를 신뢰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3일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침수 지역에서 주민 4200여 명을 구출한 공군 직승비행부대(헬기 부대)를 2일 방문해 훈장을 수여하고 격려 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자리에서 7월 31일 TV조선이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폭우로 북한의 인명피해가 1000~1500명 정도 된다고 보도한 것을 문제 삼았다.

김 위원장은 남한 언론이 "날조된 여론을 전파시키고 있다"며 "이러한 모략선전에 집착하는 서울 것들의 음흉한 목적은 뻔하다. 적은 변할 수 없는 적"이라고 말해 사실상 남한의 수해 지원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그는 러시아의 지원 제의에 대해서는 거절을 하면서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위로 서한에 대해 "가장 어려울 때 진정한 벗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도 "현 단계에서 큰물(홍수) 피해를 시급히 가시기 위한 국가적인 대책들이 강구됐으므로 이미 세워진 계획에 따라 피해 복구 사업이 진척될 것"이라는 내용의 답을 보냈다.

최근의 북러 밀착과 남북 간 대결적 상황을 비춰봤을 때 김 위원장의 이같은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남한 정부의 그간 언행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광복절 기념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제안한 것 외에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로 일관해 왔다. 이는 국방부, 외교부뿐만 아니라 통일부도 마찬가지였는데, 남북관계를 관리하는 통일부는 그 기능을 상실한 채 북한을 비난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어 부처의 존재 이유를 찾기 어려운 실정에 까지 이르렀다.

윤석열 대통령의 가벼운 말도 문제다. 지난해 3월 28일 이도운 당시 대통령실 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비공개 국무회의 중 권영세 당시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북한인권보고서 관련 보고를 들은 후 "북한 인권의 실상을 공개하는 것은 국가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다. 국가의 정당성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주기 때문"이라며 "통일부는 앞으로 '북한 퍼주기'는 중단하고 북한이 핵개발을 추진하는 상황에서는 단돈 1원도 줄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하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퍼주기'라는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으나, 국가통계인 '인도적 대북지원 현황 총괄'에 따르면 2011년 이후 남한 정부 차원에서 북한에 직접 지원을 한 사례는 2018년 산림병충해를 막기 위한 약재 12억 원 외에 단 1건도 없다.

국제기구를 통한 당국 지원은 이명박 정부 첫 해에 438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하락해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에는 '0원'을 기록했고 이후에도 액수는 이명박 정부 시기의 지원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실제로 정부가 북한에 '퍼준 것'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단 돈 1원'도 주지 말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던 윤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북한 수해에 따른 인명피해를 강조한 이후 돌연 수해 지원을 하겠다고 나선 셈인데, 북한 입장에서는 그간 윤 대통령과 남한 정부의 태도를 봤을 때 다른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즉 남한 정부는 이번 기회에 북한 정권의 무능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국제기구가 아닌 정부 직접 지원 카드를 꺼냈을 수 있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북민협 등 대북 지원 민간단체들이 민간도 함께 지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달라며 북한주민접촉신고를 제출했는데, 정부가 이를 수리할 가능성이 낮아보인다는 점을 보더라도 이번 지원이 일회성이며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남한의 수해지원 의사를 거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김 위원장이 남한과 러시아에 대해 태도 차이를 보이는 것이 현명한 대처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 위원장 말처럼 남북이 지금 "적대적인 두 국가"라고 해도 인도적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는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남북은 상대에 대한 지원을 통해 긴장이 높아지는 위기 국면을 완화시키기도 했다.

실제 1984년 아웅산 테러로 남한의 이범석 외무부 장관을 비롯해 다수의 외교관이 사망하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됐지만, 북한은 당시 서울과 경기 지역에 집중 호우가 내려 홍수가 발생하자 물자 지원을 제안했고 남한 전두환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양측 모두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진 선택이었지만 이를 통해 한반도의 안정적 관리로 나아갈 수 있었다.

김 위원장에게 러시아한테 했던 것처럼 "감사하지만 우리가 알아서 할게" 정도까지를 바라지도 않는다. 남한의 제의에 대해 무응답으로 있었다면, 또는 "안받는다" 한 마디만 했다면 서로 적절히 명분을 챙기는 수준에서 이번 국면을 끝내고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수해지원을 가지고 갈등을 키울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김 위원장은 그 의도가 어떻든 간에 지원을 하겠다는 남한에 '버럭'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실제 북한에 준 것도 없는데 '1원'도 주지 말라며 자극적인 말을 내뱉는 윤 대통령과 너무나 닮아 있는 모습이다.

남북 지도자들의 이러한 거친 말은 각자가 처해있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 위기에, 김 위원장은 국제사회로부터의 정권 전복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각자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해 상대에 대한 강경한 자세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남북의 지도자가 위기에 둘러싸여 움츠러들수록 정책 결정은 비이성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국 위기를 더 키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남한의 경우 일부 지지세력만 바라보는 정치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전 대통령들이 모두 보여줬다.

북한도 러시아만 붙잡고 있으면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되고 상황이 정리되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국제정치적‧경제적 차원에서 더 이상 북한을 감싸고 돌 이유가 없어진다.

남북 지도자가 각자 처한 위기를 벗어나고 싶다면 상대를 적대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략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것은 어떨까? 당장은 상대에 대한 적대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좋은 연료가 될 수 있지만, 내부의 민심이나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이러한 태도는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전단과 오물이 오가는 하늘을 보면서 남북의 주민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두 지도자가 깊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성을 찾아야 할 때다.

프레시안

▲ 지난 7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회 북한이탈주민의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는 윤석열(왼쪽) 대통령과 지난 4일 평양에서 열린 '신형전술탄도미싸일(미사일)무기체계 인계인수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좌),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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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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