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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2 (목)

"무상과 체념, 일본인 오장육부에 스며있어"…지진은 나라를 이렇게 바꿨다 [日요일日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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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지진 등 자연재해 빈번…무상·체념의 자연·인간관

동일본대지진으로 다시 한번 각성…'대지진 복구 계획' 마련도

지난 8일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진도 7.1의 강진으로 일본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으로 불리는 대지진의 공포도 덩달아 커지고 있죠. 사실 섬의 탄생부터 지진으로 시작됐던 일본인만큼 이 나라와 지진을 떼어서 생각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 이야기는 많이 보도됐으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오늘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가 어떻게 일본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짚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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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일본 규슈 남동부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1 강진의 영향으로 가고시마현 오사키 마을의 한 주택이 무너져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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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생부터 화산섬…전 세계 진도 6 이상 지진 20%는 日에서 발생
아시다시피 일본은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있어 지진 활동이 활발한 곳입니다. 태생부터 판의 경계에서 생겨난 화산섬이라 열도라고도 불리죠. 일본 땅덩어리 면적은 전 세계 면적으로 따지면 0.3%도 못 미치는 수준인데,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진도 6 이상 지진 중 20%는 전부 일본에서 발생합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오래전 고서에서도 지진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책에 최초에 기술된 역사상 최초의 지진은 416년 8월 22일 '일본서기'에 기록됐는데, 지금의 관서 지방 나라현에서 일어난 지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최초의 지진피해가 기록된 것은 599년이라고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진도 7.0으로 지난 8일 미야자키현에서 일어난 수준과 비슷한 강진이죠. 진원 등에 대해선 나오지 않았으나 가옥이 붕괴했다는 등 지진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이야기가 기술됐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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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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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진이 자주 발생한 것과 달리 기록에는 그만큼 많이 남아있지는 않다고 하는데요. 가옥이 무너지고 사람이 다쳤으면 그림으로 그런 모습이 남을 법한데, 예상외로 상세 묘사한 그림이 잘 없다고 해요. 이는 동아시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생각해보면 과거 일식으로 해가 가려지거나 하면 자연이 노했다며 왕이 잘못했다고 판단했죠. 일본도 자연재해는 신이 징벌로 내리는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에 지진 상황을 그림으로 남기려고 하는 사람은 지금 지도자에게 불만 있는 사람으로 비치기 쉬웠죠.

화산폭발도 마찬가집니다. 일본의 전통 그림에 등장하는 후지산을 떠올려봅시다. 언제나 정상에 눈이 소복이 쌓인 신비로운 느낌인데요. 사실 후지산은 1707년에도 대분화로 마을 전체를 화산재로 덮어버리는 등 오랫동안 활화산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도 연기 나는 후지산, 대폭발 중인 후지산의 그림은 떠오르는 게 없죠? 비슷한 이유입니다.

지진·쓰나미 오면 폐허만…일본인 특유의 감정은 '무상'과 '체념'
이렇게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다 보니 이는 일본인의 인생관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고베가쿠인대학에서 나온 '재해와 일본인의 정신성'이라는 제목의 흥미로운 논문이 있어서 내용을 일부 소개합니다.

일본은 지진과 쓰나미,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를 워낙 자주 겪는 나라인데다, 재해는 '징벌'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예로부터 재해가 발생하는 것은 '운명' 혹은 '벌을 받아 마땅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해요. 그래서 그냥 받아들이는 것으로 생각한다는데요. 이 기저에 깔린 것이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무상(無常)'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뜻인데요. 따라서 무엇을 고집한다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 됩니다. 지금 행복해도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지금 이렇게 도시가 번영하고 있어도 한순간에 지진으로 없어져 버릴지도 모르는 것이죠.

이에 자연의 은혜는 감사히 받들고, 재앙을 내릴 수 있으니 거역하지 않고 순응하자는 일본 특유의 자연관이 생겨납니다. 일본의 물리학자이자 수필가인 데라다 도리히코는 "일본은 지진이나 풍수해가 잦은데다 이를 전혀 예측하기 어려운 국토"라며 "이렇게 자연적으로 생겨난 무상이라는 감정은 조상으로부터 유전적 기억이 되어 일본인의 오장육부에 스며들어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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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일 노토반도 대지진 피해를 입은 이시카와현 스즈시에서 소방대원들이 주민을 구조해 이송하고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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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사회 윤리관과도 연결됩니다. 동일본대지진 등 큰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일본은 약탈 등 무질서가 없는 나라라고 외신에서 주목한 적이 있었죠. 재난이 발생해도 비교적 차분한 모습을 유지하는데요. 이것은 지진에 익숙해서도 있겠지만, 일본 특유의 사회윤리관이라는 분석이 있습니다.

멀쩡히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지진 등 천재지변으로 목숨을 잃는다면? 이는 개인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유가 없는 불합리한 죽음입니다. 원한 관계도 없고, 착실히 살던 사람이 갑자기 한순간에 자연재해로 세상을 떠난다면 우리는 받아들이기 어렵죠. “왜 하필 나에게”라는 생각도 들죠.

하지만 일본에서는 내가 살던 마을은 지진으로 붕괴했는데 다른 마을은 생각보다 피해가 적을 수도 있고, 인명피해가 적은 재해라고 해도 그 몇 명 안 된다는 희생자가 나, 혹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이것의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없죠. 항의할 곳이 있나요? 없죠. 원망할 상대도 없이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자들 사이에서는 ‘체념’의 정서가 생겨납니다.

이 때문에 자연재해로 돌발 상황이 닥쳐도 흥분하거나, 분노가 다른 곳을 향하는 일이 적다는 것인데요. 흥분하기보다 에너지를 제어하는 차분한 모습이 많이 관측되는 것이 이 때문이라는 것이 고베가쿠인대의 해석이네요.

21세기에 목격한 동일본대지진…또다시 일본을 바꾸다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의 공포가 엄습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이 아직 대지진의 상흔이 채 아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2011년 3월 11일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이죠. 진도 9.0으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는 장면, 쓰나미가 동네를 덮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며 큰 충격을 줬습니다. 고도의 문명사회에서도 자연재해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이라는 것을 모두가 깨닫게 됐죠.

이 동일본대지진은 일본에도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NHK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동일본대지진 이후 국민의 80%가 대지진에 대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어느 정도 느끼고 있다'가 55%로 가장 많았고, '매우 많이 느끼고 있다'는 25%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연안부에 사는 60%가 쓰나미를 걱정하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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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로 무너진 이와테현의 오쓰치정청.(사진출처=N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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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여겨볼 점은 이후 일본인의 결혼관에 변화가 생긴 것인데요.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난 2011년 올해의 한자를 선정하는데 가장 많은 득표를 한 것이 재난의 '재(災)'도 아니고, 지진의 '진(震)'도 아니라 인연을 뜻하는 한자 '끈 반(絆)'이었다고 해요. 일본어로는 '키즈나'라고 읽는데 우리나라로 흔히 '인연', '정' 으로 해석되곤 하는데 딱 맞아떨어진다곤 보기 어렵고, 마치 끈처럼 동여매진 유대감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 동일본대지진 재해 현장에서 서로 어렵지만 돕고 살리고 극복하고, 일본 자국민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에 동참하는 모습을 설명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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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발생 13주년인 지난 3월 11일 일본 센다이 주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기도하고 있다. (사진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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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기대가 살아났기 때문일까요? 동일본대지진 이전에는 결혼관을 물었을 때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응답은 27%였는데 반해, 동일본대지진 직후에는 38%로 올랐다고 하네요.

다만 염세적인 분위기도 같이 강해졌습니다. NHK 여론조사에서 신앙심을 조사한 부분에서 2011년 이후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라고 대답한 사람이 훨씬 늘어났다고 하네요.

다음은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이후 부흥계획 세운다
드디어 얼마 전 발생한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듯합니다. 난카이 트로프는 일본 본섬 중부 시즈오카현부터 남쪽 규슈 동부 해역까지 길게 뻗어있는 해곡을 의미합니다. 이 해곡에서는 100~150년 주기로 거대지진이 발생했었고, 이제 그 주기가 돌아왔다는 것인데요. 일본 정부는 그래서 난카이 트로프 거대 지진이 30년 이내에 발생할 확률을 70∼80%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규모 8~9에 달하는 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는데, 23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고 관측했죠.

주목할 것은 난카이 트로프 대지진의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동네들인데요. 이곳 지방자치단체(지자체)에서는 미리 대지진 이후 마을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고 합니다. 주택을 쓰나미가 지나간 현지에 재건할 것인지, 아니면 고지대에 새로 지을 것인지, 임시 주택 용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논의하는데요. 동일본대지진 때 이를 조정하는 데도 한참 걸리면서 재건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인구도 다 유출돼버린 것을 계기로 삼았다고 합니다. 가령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이 발생하면 쓰나미 피해를 입게 되는 고치현의 경우 연안 부분 마을에 대해서는 2027년까지 재건 계획을 세워서 제출하라고 요구했을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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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미야자키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1 지진으로 발령된 쓰나미 주의보.(사진출처=연합뉴스)


국토교통성은 전국 지자체에 이같은 재건 계획 책정을 요청하고 있지만, 지난해 7월 말 시점에서 책정을 마친 것은 2%에 해당하는 30개 지자체에 그쳤다고 하네요.

이번 임시정보는 난카이 트로프에 이상 현상이 관측됐을 경우 발령하는 것인데요. 일주일간 별다른 영향이 없으면 해제됩니다. 그런데 하필 난카이 트로프에 해당하는 미야자키현 앞바다 지진 발생 다음 날 도쿄 인근 지역 가나가와에서 또다시 지진이 발생하면서 불안감이 맞물리게 됐죠. 판 자체가 서로 달라서 영향을 주고받는 지진은 아니었다고 합니다만 도쿄에서도 마트와 편의점 사재기가 일어나는 등 불안한 마음이 쉽게 진정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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