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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3 (금)

[IT·게임 세상]공공 DNA DB?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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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에는 기술 발전에 대해 회의감을 부쩍 느낀다.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딥페이크 성범죄 때문이다. 올해 5월 일명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지난주에만 딥페이크 성범죄가 두 건이나 보도됐다. 피해자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영상을 보기 위해 무려 1200여명이나 채팅방에 참여하고 있던 인하대 딥페이크 사건, 동급생과 교사 얼굴을 음란물과 합성해 공유한 부산 중학생 딥페이크 사건이다.

딥페이크라는 기술은 비교적 최근에 등장했지만, 악의적으로 불법성착취 영상을 제작하고 공유하는 행태 자체는 우리 사회가 익히 보아왔던 것이다. 1997년 ‘빨간마후라’에 이어 2018년 ‘n번방’, 그 외에도 지금까지 여러 여성을 대상으로 한 불법성착취 영상 등. ‘성욕’만을 위한 일들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왜곡된 권력욕이 도사리고 있다. ‘n번방’처럼 피해자를 직접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불법성착취 영상을 돌려보는 커뮤니티에서의 욕망마저 포괄한다. 이 때문에 이런 성범죄는 제작 단계에서 끝나지 않고 꼭 공유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 안에서 제작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그들은 기어코 자신이 제작한 불법성착취 영상을 어딘가에 업로드한다.

그래서 이런 성범죄는 영상 제작자를 붙잡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가해자가 만든 영상은 가해자가 감옥에 간 이후에도 계속 유포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해자를 붙잡는 것만이 아니라 영상이 유포되지 않도록 막는 후속조치도 필수적이다. 놀랍게도 현재 우리나라에는 불법성범죄 영상이 유포되지 않도록 모니터링하고 차단하는 시스템이 공공에 마련되어 있다. 2021년에 오픈하여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운영하는 ‘공공 DNA 데이터베이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름만 보면 고개를 갸웃할 수 있겠지만, 이 사업에서 일컫는 ‘공공 DNA’란 불법성착취 영상을 식별할 수 있는 핵심 정보다. 여성가족부·경찰청·방송통신위원회와 연계하여 신고받은 영상물 정보를 상시로 DB에 업데이트하고 이를 웹하드 등에 적용하여 필터링한다는 것이 사업의 골자다. 다시 말해 웹하드 등에 불법성착취 영상이 게시되지 않도록, 해당 영상이 신고받은 영상인지 여부를 사전에 검수하는 기능인 셈이다.

신고받은 영상을 식별하여 올리지 않도록 막는 기술이라니 얼마나 대단한가. 그러나 문제는 이 공공 DNA DB가 제대로 활용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에 공공 DNA DB의 사용 현황에 대해 방심위와 방통위에 각각 정보공개청구를 했지만 모두 “데이터가 부존재”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나마 방심위에서는 매년 공공 DNA DB에 신규 업데이트되는 영상 건수를 알려주었는데, 2019년부터 2024년 3월까지 등록된 불법성범죄 영상의 DNA 건수는 무려 7만여건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 DB를 누가 사용하고 있는지, 정말 필터링되고 있기는 한지에 대한 데이터는 방통위도 방심위도 갖고 있지 않다고 한다. 어디에도 데이터가 없다는 건, 실제 활용되고 있는지 전혀 관리하지 않는다는 의미 아닌가. 불법성착취 영상은 증가하는데 기껏 개발된 필터링 기술이 활용되지 않는다면, 이 공공 DNA DB는 대체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인가.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생각보다 공공 영역의 기술도 발맞춰 가고 있다. 문제는 운영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술을 개발해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마침, 방심위는 얼마 전 대학가 딥페이크 성범죄에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제재와 차단뿐만 아니라 이미 있는 기술의 정비와 운영에도 힘쓴다면, 피해자를 다각도에서 지원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위원·위원장 자리를 놓고 정치적 분쟁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피해는 속출하고 있다. 누가 되든 할 일을 하자. 무엇보다 지금 하던 일을 더 잘하는 방향으로.

경향신문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조경숙 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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