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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일사일언] 행복은 벽돌 한 장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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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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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는 하루를 알차게 쓰는 게 행복이고 값진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는 시간 없이 최대한 일을 많이 하는 하루, 그래서 나 자신을 완전연소시킨 하루, 그런 하루가 기억에 남는 하루였다.

2010년 가을 어느 금요일,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하루로 기억되는 날이 있다. 그때 아침 라디오 방송 작가를 하고 있었기에 집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수원에 있는 방송국에 출근했고 아침 6시부터 8시까지 생방송을 했다. 그리고 수원에서 경기도 부천으로 이동해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TV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했다. 다행히 녹화 들어가기 전에 김밥이랑 커피를 간식으로 준비해 줬기에 끼니는 해결할 수 있었다.

오후 1시 녹화가 끝나고 목동으로 이동해 새롭게 준비 중인 프로그램 회의를 하고 오후 5시 30분 비행기로 도쿄에 갔다. 그때 내가 제작했던 뮤지컬이 도쿄에 있는 공연장에서 상연을 하게 됐고 나는 작가이자 제작자로 초대를 받았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버스를 타고 도쿄 중심에 있는 식당에 도착했더니 그때 시간이 밤 9시 30분. 식당에 들어갔더니 일본 배우들이 “아버지 왔다!”라며 나를 반겨줬다. 그 배우들과 맥주 한잔 마시고 숙소에 들어왔더니 11시 50분. 나는 침대에 멍하니 앉아 하루를 돌아봤다. 집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지금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일한 나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아무리 마이클 잭슨 전성기라도 이렇게 알차게 하루를 보낼 순 없을 거야.’ 그 시절에는 하루에 집 한 채 지을 것 같은 열정으로 살았지만 요즘은 하루에 제대로 된 벽돌 한 장만 올려도 성공이라는 심정으로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좋은 컨디션으로 동네 산책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숍에서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집에 와서 대본을 쓰고, 저녁이면 좋아하는 친구와 통닭 한 마리에 500㏄ 맥주 딱 두 잔 마실 수 있는 행복. 일을 많이 해서 감사한 게 아니라 오늘도 무사히 벽돌 한 장 올릴 수 있어서 감사한 하루. 내가 게을러지고 비겁해진 게 아니라 벽돌 한 장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됐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재국·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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