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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국내팬 “슈가, 탈퇴해야”… 해외팬 “너무 가혹” 두 동강 난 ‘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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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 음주운전 후 BTS 팬덤 분열

조선일보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슈가(31·본명 민윤기)가 지난 23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출석하는 모습. 그는 지난 6일 오후 11시 15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 도로에서 만취 상태로 전동 스쿠터를 탄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형사 입건됐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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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글로벌 팬클럽 아미(ARMY)가 멤버 슈가(본명 민윤기·31)의 전동 스쿠터 음주 운전 사건 이후 극심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상당수 국내 팬은 “슈가가 BTS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탈퇴까지 요구한다. 반면 외국 팬들은 “한국 팬들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 슈가도 잘못을 할 수 있다”며 감싼다. 2013년 데뷔 이후 BTS를 세계 정상에 올려놨던 견고했던 팬덤이 K(Korea·한국) 아미와 I(International·국제) 아미로 두 조각 난 상황이다.

최근 서울 용산구 BTS 소속사 하이브 사옥 앞에는 슈가의 탈퇴를 요구하는 근조 화환 30여 개가 일렬로 늘어섰다. 리본엔 ‘우리 손을 놓은 건 너야’ ‘무슨 근황을 사회면 뉴스로 알려주니’ 등 문구가 적혀 있었다. 슈가가 사는 한 고급 아파트 앞에선 ‘팬들에게 떳떳이 고개 들라면서 돌아온 건 음주 운전’ ‘알코올농도 커리어하이 0.227%’ 같은 자막을 띄운 전광판 트럭 시위도 이어졌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K아미들은 그간 10대들의 우상이었던 BTS 멤버인 슈가가 음주 운전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 팬은 “이건 우리가 바라던 BTS의 모습이 아니다”라며 “슈가는 우리가 흘려온 그간의 피, 땀, 눈물을 배신했다”고 했다. 슈가와 하이브가 음주 운전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전동 스쿠터를 ‘킥보드’라고 표현하거나, 맥주 한 잔을 마셨다고 경찰에 진술했으나 사실은 만취 수준의 측정 수치가 나왔다는 점, 집 앞에 주차를 하다가 사고가 났다고 했던 최초 진술과 달리 인도 주행 중 넘어진 점 등에 대해서도 국내 팬들은 “우릴 속이려 했느냐”며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I아미들은 한국 내 여론이 슈가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불만을 쏟아낸다. 27일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에 슈가의 서울 용산서 출석 영상이 게재되자 영어·중국어·스페인어·아랍어·러시아어 등으로 적힌 항의 댓글 200여 개가 달렸다. “영상을 당장 내려라” “이 영상은 경찰서 바깥에서 불법으로 찍혔다” 같은 반응이었다.

한 외국 팬은 “그간 쌓아온 한국에 대한 호감이 지난 몇 주간 무너졌다”며 “BTS를 통해 한국 문화의 아름다운 면을 봤는데, 슈가를 비난하는 한국 네티즌들에게서 1000배는 더 추악한 면을 봤다”고 했다. BTS 멤버라는 이유만으로 슈가가 과도한 마녀사냥을 당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다른 외국 팬은 “한국 언론이 한 주간 슈가와 관련해 1400건 기사를 쏟아냈다”며 “반면 자동차 음주운전을 한 야구 선수 기사는 매우 적다”고 했다.

일부 외국 팬은 한국 불매 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한 팬은 “남편과 내년 여름 한국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이번 사태로 한국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며 일본을 가겠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BTS를 대우하는 한국에 가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있었다.

BTS가 그간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는 외국 팬의 지적도 있다. 이들은 “프로게이머, 축구 선수, 올림픽 출전자도 군 면제를 해주면서 한국을 널리 알린 BTS는 입대하게 했다”며 “어떤 나라도 그 나라의 최고 아티스트를 이런 식으로 대우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I아미들은 X·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선 ‘KoreanPoliceCorrupt(한국 경찰은 부패했다)’ 등 해시태그 운동도 진행 중이다.

양측의 갈등은 단순 의견 충돌을 넘어 서로를 향한 비난전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일부 국내 팬은 외국 팬을 향해 ‘외퀴(외국 팬+바퀴벌레)’라는 멸칭을 붙여 “한국 법도 알지 못하면서 이를 마녀사냥으로 몰아가지 말라” “한국에서 음주 운전은 예비 살인과 같다”고 비난했다. 외국 팬들은 자신들이 K아미와는 별개의 I아미라고 주장하며 “한국에 아미는 없다. 안티만 남았을 뿐” “우리는 K아미처럼 성급하지 않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BTS 팬덤 분열이 그간 급속 팽창해온 K팝 산업의 한 그림자라는 분석을 내놨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는 “한국에선 연예인 등 유명인의 음주 운전에 대한 도덕적 잣대가 높아지고 있지만, 개발도상국 등에도 광범위하게 분포돼 있는 각국의 BTS 팬들에겐 이 같은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 것”이라며 “그만큼 BTS 팬덤이 세계적으로 넓게 형성됐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서울 용산서는 27일 “슈가에 대한 피의자 조사가 대략 마무리됐으니 조만간 사건을 검찰에 넘길 것”이라고 했다.

[서보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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