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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1913년·사진)는 그가 1910년대부터 관심을 갖고 종종 그린 주제였다. 그림은 서커스에서 일어난 사고를 묘사하고 있다. 세 명의 곡예사가 말에서 떨어진 여성 기수를 조심스럽게 옮기고 있다. 사고를 친 흰말은 무대에서 나와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 앞쪽에 등을 돌리고 앉은 남자는 깊은 슬픔에 빠졌다. 표정은 볼 수 없지만 흐느끼고 있음이 분명하다. 갈색으로 표현된 피가 여자의 입과 이마까지 흥건히 적신 걸 보니 어쩌면 이미 사망한 상태인지도 모른다. 화가는 동료를 잃은 곡예사들의 표정을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았다. 비탄의 표정을 차마 그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화려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서커스장이 순식간에 처참한 비극의 현장으로 변했을 터. 이는 아마도 화가가 직접 목격한 장면일 가능성이 크다. 그림은 더 성공적인 쇼를 위해 곡예사들이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서커스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케가 서커스에 관심을 가진 건, 연약한 기수의 처지가 사회 변방에 위치한 예술가들의 입지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마케는 칸딘스키와 함께 독일 표현주의의 한 유파인 ‘청기사파’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다. 청기사는 ‘푸른 기사(騎士)’라는 뜻이다.
마케는 새롭고 혁신적인 예술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빠르게 인정받았다. 그러나 1918년 8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소집 명령을 받고 입대하면서 경력이 단절됐다. 서부 전선에 배치된 지 두 달도 안 돼 전사했기 때문이다. 향년 27세였다. 8월이란 이름을 가진 청년 화가에겐 너무도 잔인한 8월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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