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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적반하장’…김순호 밀정 의혹 공익제보했더니 되레 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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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2년 9월7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회관에서 열린 ‘밀정의혹 김순호 파면, 녹화공작 진상규명 국민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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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전 경찰국장의 인사 검증을 위해 ‘프락치(밀정) 의혹’ 자료를 언론에 넘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입건된 이재범 녹화·선도공작 의문사 진상규명대책위 전 간사가 “경찰 수사는 공익제보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과거사 관련 정부 기관의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수사가 고위공직자 검증을 위한 시민 사회의 노력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서울경찰청 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26일 이 전 간사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경기 화성의 한 사무실에서 28일 한겨레와 만난 이 전 간사는 김 전 국장의 밀정 의혹을 뒷받침하는 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 존안자료를 2022년 당시 언론에 전한 것에 대해 “227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김 전 국장의 파면을 요구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공익적 목적의 문제 제기였다”고 주장했다. 당시 김 전 국장이 경찰국장으로 임명되자, 경찰 안팎에선 경찰국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 국가 폭력을 벌인 ‘내무부 치안본부’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진 바 있다. 특히 김 전 국장의 이른바 ‘밀정 의혹’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2000년부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관 등으로 수십년 활동하며 녹화·공작 피해자와 접촉하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이 전 간사는 초대 경찰국장 임명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이름이 익숙했다”고 말했다. 마침 김 전 국장의 성균관대 동문이 “(김 전 국장이) 노동운동을 하다 1989년 돌연 사라지더니 보안특채로 경찰관이 됐고 비슷한 시기 같이 활동을 하던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동료들이 경찰에 잡혀갔다”며 ‘밀정 의혹’을 제기했다. 김 전 국장은 이를 부인하며 “주사파와 단절”을 위해 경찰을 찾아가 자백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 전 간사가 김 전 국장의 보안사령부 존안자료를 찾아 나선 건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에 검증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보안사령부는 학생운동에 가담한 학생들을 고문·협박한 뒤 프락치로 활용하는 ‘녹화사업’을 진행했고 이를 자료로 남겼다. 이 전 간사는 김 전 국장 존안자료 80쪽 중 5쪽을 힘들게 구해 언론사에 건넸다. 자료에는 김 전 국장이 1983년 강제징집된 뒤 이념 서클의 조직도는 물론 합숙·엠티(MT) 일정 등 매우 구체적인 학내 동향을 보고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이후 문제가 된 건 고위공직자인 김 전 국장의 과거 행적이 아닌 ‘자료 유출’이었다. 김 전 국장은 지난해 7월 본인의 존안자료가 유출된 경위를 파악해달라며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했고, 경찰은 이틀 만에 수사에 착수했다. 1년여간 진실·화해를 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비롯한 기관과 관련 시민단체 등을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강제수사를 벌였다.



이 전 간사는 여전히 국가폭력으로 인한 의문사 규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치안본부의 ‘고문 후유증’으로 1990년 숨진 노동운동가 최동씨와 관련한 1장 짜리 보안사령부 자료를 겨우 받아내기도 했다. 최씨는 김 전 국장과 대학 동문으로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걸로 알려져 있다.



이 전 간사는 “경찰, 군, 안기부(현 국정원) 같은 가해 기관이 협조하지 않아 지금까지 전혀 확인되지 않는 정보들이 많다”고 했다.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려워 과거 행적을 검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은 그가 김 전 국장 존안자료를 제보하기로 결심한 이유 중 하나다. 그는 “존안자료 자체가 결국은 ‘불법 자료’다. 정당한 국가기관으로서의 업무 범위에 속한다고 볼 수 없는 것”이라며 “국가는 여전히 가해자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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