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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미국 민주당과 시대의 풍향 [장석준의 그래도 진보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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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간) 미시간주 웨인에서 전미자동차노조(UAW) 조합원들을 상대로 유세하고 있다. 팀 월즈 부통령 후보와 숀 페인 UAW 위원장이 뒤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웨인/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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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지난주에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다. 사실상 확정된 대선 후보를 형식적으로 추인하는 행사이기에 극적일 것은 없었다. 그러나 예년과는 다른 연사 명단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의 숀 페인 위원장이었다.



사실 민주당은 뉴딜 이후 줄곧 노동 진영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기에 산업별 노동조합 위원장의 등장 자체가 큰 이변은 아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전성기에 민주당 주류가 노동조합을 그리 진지하게 대우하지 않았던 점을 돌이켜보면, 시대 분위기가 확실히 바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연설 내용이었다. 페인은 단도직입적으로 ‘파업’을 이야기했다. 최초로 조합원 총투표로 유에이더블유 위원장에 선출된 페인은 작년에 북미 자동차 3대 회사를 상대로 동시 파업을 이끌었다. 그 결과, 수십년 만에 다시 노동권의 ‘방어’가 아닌 ‘신장’을 주 내용으로 하는 단체협약이 체결됐다. 하지만 3대 회사 중 스텔란티스는 외주하청을 줄이라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페인은 전당대회 연설에서 스텔란티스를 콕 집어 거명하며 새로운 공세적 투쟁을 예고했다.



또한 페인은 이런 운동 노선의 연장선에서 트럼프주의에도 일침을 날렸다. 여성이나 소수 인종에 대해 문화 전쟁을 벌이고 이민자나 무슬림을 공격하면서 상당수 백인 노동자의 지지를 확보해온 트럼프 진영의 전략을 노동계급을 분열시켜 힘을 빼는 이이제이 술책이라 규정했다. 노동 대중에게는 “단 하나의 진정한 적”이 있을 뿐이며 그 적은 곧 대자본이라 못 박고, 극우파와 대자본의 동맹에 맞선 모든 노동계급의 단결을 호소했다.



유럽이나 라틴아메리카 좌파정당 대회라 하더라도 상당히 급진적으로 들렸을 내용이다. 그렇다고 페인의 연설 내용이 미국 민주당의 새 노선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민주당의 다른 한 축은 여전히 빅테크, 월스트리트, 할리우드라는 현대 자본주의의 최첨단 부문이며, 지지층 내부에서 반전 여론이 빗발침에도 당 주류의 이스라엘 지지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트럼프주의 같은 흐름을 제압하기 위해 민주당이 앞으로 장기간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는 분명히 이해하고 있는 모양새다. 팀 월즈의 부통령 후보 지명도 그 징표다. 월즈는 민주당에서 부통령 후보로 하마평에 오른 이들 가운데 노동조합운동과 가장 끈끈한 연계를 맺고 있는 인물이다. 실제로 월즈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같은 정치권 좌파뿐만 아니라 페인 위원장 등 노동 진영의 의견과 압력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즉, 기존 공화당 지지층에 백인 남성 노동자의 지지를 더하며 위력을 떨쳐온 트럼프주의에 맞서 노동조합의 재강화를 통해 노동계급 전체를 지지층으로 탈환하는 것이 민주당 정치의 새로운 중심 내용으로 떠오르고 있다. 바이든을 당선시킨 2020년 대선에서도 이런 흐름이 일정하게 나타났지만, 지난 4년간 미국 노동조합운동이 강력히 부활함으로써 이번 선거에서 이 기조가 더욱 선명히 부각되고 있다.



이런 미국 정치의 동향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의 진로와 직결된다. 미국이 자본주의 패권국이 된 이후 지금까지 미국 정치의 세력 배열은 좋든 싫든 다른 나라 정치의 행로도 상당 부분 규정했다. 그런데 그 미국에서 지금 조직노동이 다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정치연합이 출현하려 하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사의 풍향에 이목을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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