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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4 (토)

'응급실 뺑뺑이' 원인은 응급의료 아닌 배후진료 역량 부족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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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의식 기자]
라포르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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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포르시안] 국내 응급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는 응급의료 자체보다는 배후진료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속칭 '응급실 뺑뺑이'로 불리는 문제 역시 해당 병원에서 중증응급환자의 최종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배후진료 역량이 부족해 병원 전 단계에서 수용거부로 불가피하고, 이 과정에서 사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윤·전진숙 의원은 지난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응급의료 배후진료 역량 강화 및 제도 개선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인하대병원 예방관리과 임준 교수는 국내 응급의료 붕괴의 주요 원인으로 배후진료 역량 문제를 강조했다.

임준 교수는 "흔히 병원 이송 단계에서 환자가 빨리 도착하면 건강 수준이 높아지고 사망이 줄어들 걸로 생각하지만, 국가통계포털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증 최초 응급실 도착 시간과 응급진료 사망률에서 불일치가 발생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며 "중증 외상 환자가 골든타임 내에 응급실에 도착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서울보다 도 지역이 더 빨리 도달하지만 사망률은 서울이 압도적으로 낮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환자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응급실에 이송된 환자가 CT 검사를 통해 뇌출혈이 확인됐는데 당장 외과 수술이 가능한 전문의가 없다면 전원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급성심근경색이 의심되는 환자가 응급실로 왔을 때 검사와 응급처치만으로 살릴 수 있는 게 아니라 배후 진료로 심혈관조영술과 스텐트 삽입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것처럼.

임 교수는 "응급실 도착 시간이 빨라도 사망률이 높은 이유는 해당 지역 병원의 응급실에 배후진료 역량이 없기 때문"이라며 "배후진료 역량이 있는 병원으로 자꾸 전원하다보니 그 과정에서 사망이 증가하는 것이다. 이런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료기관 종별로 배후진료 역량에 맞는 역할 부여가 필요하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임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은 권역센터 또는 중증 응급센터의 기능을 담당하고, 3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은 지역응급의료센터 기능을 담당하는 매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며 "지역응급의료센터 중 상당수가 공급과잉 지역에 분포해 있다. 지역응급의료센터 중 11% 정도는 적정 규모 이하인데 공급과잉 지역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분포과소 지역 중에선 꼭 필요한 지역응급의료센터가 없다는 문제가 분명히 있다"며 "이런 불균형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결국 응급실에서 뺑뺑이 문제나 사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응급실 전문의 부족 문제는 당장 충원이 어려운 만큼, 기존 인력의 효율적 배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임준 교수는 "전문의 숫자가 부족하다고 하지만 전체 응급실 전문의 수를 보면 권역센터나 지역센터에만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응급의료기관에서도 상당히 많이 배치돼 있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응급의학 전문의도 마찬가지이다. 지역 응급의료기관이 중증 응급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배후진료 역량은 취약하다. (지역 응급의료기관의) 인력이 권역 및 지역 센터에 잘 배치된다다면 문제를 일정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응급의료 4차 기본계획에 따라 경증환자가 방문하는 지역 응급실에 '응급' 개념을 부여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3월 응급의료 4차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현재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기관을 각각 중증-중등증-경증 응급진료에 집중하는 단계별 기관으로 기능을 명확히 하고, 명칭도 '중증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실'로 변경하기로 했다.

임 교수는 "지역 응급실이 경증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라며 응급이라는 개념을 반드시 써야 되는지 의문이 있다"며 "응급이라는 개념을 쓰다 보니 국민에게 혼선이 발생해 배후진료 역량이 없는 응급실로 가게 되고, 이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응급의료 배후진료에 대한 정책적 대안이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임 교수는 "정부의 응급의료 정책 중 전향적인 부분도 상당히 많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문제는 배후진료 역량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 대안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이라며 "재정 투자 계획에서 배후진료 역량 강화를 위한 인프라 확충 계획은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고, 이런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질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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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로 나선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홍석경 교수는 현재 부족한 응급의료 인프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한국형 외과의료 시스템' 구축을 제안했다.

홍석경 교수는 "국내 외과 응급의료 체계에서 가장 문제는 외과의사 부족이다. 빅5 병원들의 경우 인프라는 많지만 응급의료가 가능하냐는 점에서 상대적 빈곤이다"라며 "수가 체계가 돈이 되는 분야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빅5 병원들조차 (응급의료 상황에서)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은 수술실도 많고 의사도 많지만 정작 응급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술방과 의사가 없다"며 "반대로 지역에서는 수술방이 비어 있을 수 있으나 수술할 수 있는 외과 의사가 부족하다. 응급의료 체계를 제대로 잡고 최종 치료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응급 수술과 응급 치료를 유지할 수 있는 최종 치료과에 대한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이유로 한국형 외과 응급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응급실 뺑뺑이를 하게 만드는 주요 질환과 심뇌혈관질환처럼 골든타임이 굉장히 중요한 질환들, 그리고 외과 응급질환의 경우 더욱 적극 지원해서 그 팀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지난 2017년부터 운영 중인 ACS(Acute Care Surgery)팀을 예로 들었다. ACS팀은 당수의 외과응급당직의가 응급수술, 중환자 집중치료, 외상 분야의 외과 내 중증‧응급환자들을 진료하는 팀을 뜻한다. 외과응급당직의사는 평소 외과 전문의로서의 정규업무를 하지만, 외과응급 당직 시 응급실 업무에 몰입하는 시스템이다.

홍 교수는 "현재 중환자실과 응급외상을 같이 하고 있는데, 응급수술팀 외과 전문의 5명이 24시간 365일 지속하고 있다"며 "이들이 (당직근무로) 응급실에 오면 바로 응급환자를 본다"고 전했다.

그는 "의사가 응급수술을 결정하는 시간은 굉장히 빠르지만 응급수술실이 없기 때문에 수술을 시행하는 시간은 굉장히 길어진다"며 "정규 수술이 끝난 이후에 하기 때문에 아무리 의료 인프라가 많다고 해서 응급수술이 저절로 굴러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부분은 공공의료로 지정해 별도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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