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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인류세 회의론? 기후변화 못 믿는 것과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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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셸 와그리치 비엔나대 교수가 29일 부산지질과학총회에서 열린 ‘인류세, 역사와 지질학: 현재 논쟁에서 기여’에서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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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가 지질학계에서 거부된 데 대해 관련 제안서를 낸 인류세실무그룹(AWG) 소속 과학자들이 지질학계의 논리가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기후변화 회의론’과 비슷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29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열린 ‘인류세, 역사와 지질학: 현재 논쟁에서 기여’ 세미나에서 인류세실무그룹 소속인 미셸 와그리치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교수(지질학)는 “국제층서위원회(ICS)와 국제지질과학연맹(IUGS)에게 인류세가 왜 부결됐는지 여태 과학적인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인류세는 인류 활동이 지구의 물리·화학적 시스템을 바꾸어 지구가 홀로세의 평형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질시대로 진입했다는 주장이다. 2000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이 거론한 이후 지질학계는 물론 자연과학자와 인문사회학자, 예술가들이 인류세와 관련한 연구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지질학계에서는 지구가 새로운 지질시대에 진입했는지 검토하기 위해, 2009년 국제층서위원회 산하 제4기소위원회(SQS)에 일종의 테스크포스인 인류세실무그룹을 꾸렸다. 10년이 넘는 연구 끝에 인류세실무그룹은 지난해 ‘인류세가 1952년에 시작했으며, 캐나다 크로퍼드호수가 지질시대의 경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국제표준층서구역(GSSP·황금못)’이라고 밝혔다. 1952년을 인류세의 시점으로 한 이유는 핵실험으로 인해 1952년 대기중 플루토늄 농도가 급상승했기 때문이다(밤 스파이크).



하지만 인류세실무그룹이 제출한 제안서는 지난 3월 제4기소위원회 투표에서 부결됐다. 원래 이 제안서는 제4기소위원회와 국제층서위원회 투표를 거쳐 이번에 열리는 부산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최종 비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제4기소위원회의 투표 참여 위원 중 상당수가 무자격자이고 위원장의 동의 없이 부위원장이 투표를 강행했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상위 기관인 국제층서학회와 국제지질과학연맹이 투표 결과를 인정하는 성명서를 내면서 최근 들어 논란은 잦아든 상태다.



이날 발표에서 와그리치는 “인류세실무그룹의 제안서는 다시 수정하여 제출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부결해 버렸다”고 말했다.



와그리치는 인류세실무그룹의 일원인 콜린 워터스 영국 레스터대 교수 등 4명과 함께 이번 발표를 준비했다. 이들은 미리 제출한 초록에서 “일부에서는 인류세실무그룹이 과학에 기반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인류세를 다뤘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국제층서위원회의 층서학 프로토콜과 절차를 따라 풍부한 지질학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명하게 결론을 도출했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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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렌 독일 막스플랑크 지리인류학센터 소장은 향후 인류세 연구는 자연과학과 인문사회학이 융합하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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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와그리치는 ‘인류세 회의론’이라는 단어를 거론했다. 인류세를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정하는 데 회의적인 입장은 기후변화 거부나 회의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했다. 지질학계의 인류세 거부는 인간이 지구와 지구 시스템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 지질학자는 ‘아니오’라고 대답한 것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초록에서도 “과학을 오용해 기후변화 회의론을 지지한 활동을 파헤친 ‘애그토톨로지’(agnotology)를 통해 인류세 회의론을 개념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애그노토롤지란 특정 주제에 대한 의심과 무지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연구하는 사회과학 분야다. 부정확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데이터에 의존하는 과학 연구를 주요 탐구 대상으로 한다.



지질학계에서 부결됐지만 인류세 연구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열린 세미나에서도 지질학자는 물론 인류학자, 과학사 연구자 등이 나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대한지질학회도 인류세분과(위원장 남욱현 지질자원연구원 박사)를 두고 인류세에 관한 지질학적 연구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장태수 전남대 교수(지구환경과학)는 “5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강화도 갯벌을 시추해 한국의 인류세 흔적을 조사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지질과학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는 전 세계 121개국 지질학자 7000명이 모여 지난 26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했다. 지질과학총회는 41개 233개 세션을 마치고 31일 막을 내린다.



2일부터 3일까지 대전 카이스트에서는 이 학교 인류세연구센터가 주최하여 ‘인류세 파악하기: 다학문적 접근’(Projecting the Anthropocene: Multidisciplinary Approach)을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이 열린다. 위르겐 렌 독일 막스플랑크 지리인류학연구소장, 마틴 헤드 캐나다 브록대 교수, 박범순 인류세연구센터장 등이 참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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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글·사진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 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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