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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텔레그램 못 잡는데…” 경찰도 포기한 딥페이크, 해결 방법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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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이가영의 사건노트]

[사건노트]는 부장검사 출신 김우석 변호사가 핫이슈 사건을 법률적으로 풀어주고, 이와 관련된 수사와 재판 실무를 알려드리는 코너입니다.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 여자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문제가 되곤 했다. 이제는 우리 주변의 대학생, 중‧고등학생, 심지어 어머니 등 가족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영상이 나타나고 있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누구든 손쉽게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누구나 딥페이크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우리 사회는 이를 막을 수 있을까?

Q. 이른바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에서 담당 경찰관은 “아, 텔레그램 못 잡는데”라며 가해자 처벌을 포기하라는 취지로 말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요?

A.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은 서울대 출신인 주범 박모(39)씨 등이 텔레그램으로 대학 동문 여성 수십명의 사진을 합성한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사건입니다.

피해자를 비롯해 일반 시민들의 시각에서는 수사기관의 ‘포기하라’는 말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수사기관도 신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일례로, 살인사건과 같이 심각한 범죄도 수사기관에서 살인자를 찾지 못해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는 경우가 있습니다.

소셜미디어나 채팅 앱을 통하면, 자신이 누구인지 숨긴 채 비대면 소통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수사기관은 가해자를 찾으려면 앱을 운영하는 회사의 협조를 받아야 합니다. 압수수색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텔레그램이나 페이스북 등 외국 회사를 대상으로는 법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수사권이 미치기 힘듭니다. 한국 수사기관이 해외에 있는 외국인이나 회사 서버를 압수수색 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 나라의 사법권을 침해하는 것이 될 수 있고, 외교 분쟁으로 비화할 우려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 수사기관이 외국으로 출장 가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는 것도 인력, 예산, 언어 등의 문제로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담당 경찰관이 텔레그램의 협조를 얻기 어려워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이야기했을 겁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Q. 그러면 텔레그램 등 해외 메신저를 이용해 딥페이크 영상을 퍼트리면 현실적으로 가해자를 처벌하기 어렵다는 말씀인가요?

A. 안타깝지만, 현실적인 어려움과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외국 기업이 운영하는 메신저 등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보이스피싱 조직도 활개를 치고 있지만 우리나라 수사권의 현실적 한계로 인해 범죄를 근절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외 메신저를 통한 딥페이크 성착취물도 이와 비슷한 상황에 부닥쳐 있는 겁니다.

Q. 너무 화가 납니다. 가해자가 해외 메신저로 자신을 숨기면서 범죄를 저지르면, 피해자는 당하고만 있어야 하나요? 대책은 정말 없는 건가요?

A. 우선, 수사기관에 새로운 무기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함정수사, 잠입수사를 허용해야 합니다. 수사관이 텔레그램 단톡방에 들어가 가해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가해자를 유인해 검거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함정수사는 수사기관, 곧 국가가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거나 범인을 속이는 방법이라는 점에서 정당하고 합법적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불법이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입법을 통해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만 합법적으로 함정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면 이러한 위법 시비가 사라집니다. 이런 측면에서, 8월 30일 정부가 ‘위장 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입법을 검토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는데,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해외 메신저 등을 사용해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며 저지른 딥페이크 범죄에 대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가혹한 처벌을 해야 합니다. 적발되기는 쉽지 않지만, 일단 적발되기만 하면 엄청난 처벌을 받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최근 법원은 보이스피싱 범죄의 단순 가담자에 대하여도 무거운 실형을 선고하고 있습니다. 일단 적발되면, 엄벌하는 거죠. ‘나는 안 잡힐 거다’라고 생각하는 딥페이크 범죄자도 이렇게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Q. 우리나라는 자기 혼자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만들어 소지‧시청하는 것은 처벌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너무 불쾌할 것 같은데요, 이래도 되나요?

A. 성폭력처벌법에 의하면,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할 ‘목적’으로 딥페이크 영상을 만든 경우, 형사 처벌합니다. 또한, 반포 목적으로 만든 영상을 실제로 반포한 경우에도 형사 처벌합니다.

다만, ▲반포 ‘목적’ 없이 혼자 보려고 딥페이크 영상을 만든 경우 ▲딥페이크 영상을 단순히 소지‧시청‧구입‧저장하는 경우에는 형사처벌 하는 규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현행법상 이를 처벌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혼자 보려고 만든 딥페이크 영상도 일종의 ‘몰카’ 범죄로 봐야 합니다. 불법 촬영 범죄는 실제로 촬영하는 것이고, 딥페이크는 가짜로 촬영하는 것의 차이일 뿐입니다.

▲불법 촬영 범죄를 형사처벌하고 있고, ▲단순히 자기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실 세계에서 영상을 ‘제작’했으며 ▲그 영상이 유출되거나 다른 사람이 시청할 때 피해자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줄 우려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형사처벌 규정을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또한 딥페이크 영상을 소지‧시청‧구입‧저장하는 것도 몰카 영상을 소지‧시청‧구입‧저장하면 처벌받는 것과 균형을 맞추어 형사처벌 하는 규정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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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0일 대전경찰청에서 경찰, 대전시, 대전시교육청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딥페이크 성 착취물 관련 범죄 집중단속 회의를 하고 있다./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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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인 또는 같은 학교 학생이 나의 딥페이크 성범죄 영상을 만들어 유포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자기가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뭘까요?

A. 슬픈 현실입니다만, 성범죄는 아는 사람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딥페이크 성범죄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속칭 ‘지인 능욕’이라는 거죠. 특히 10대 청소년들의 경우, 딥페이크를 ‘장난’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성폭행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라는 거죠.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는 심각한 일인 만큼 엄한 처벌이 불가피합니다. ‘걸리면 끝난’는 인식이 확립되어야 딥페이크 범죄가 수그러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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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석 법무법인 명진 대표 변호사. /조선일보DB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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