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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윤석열 정부 출범

[이기수 칼럼]‘지·포·대’ 윤석열 vs 차별화 급한 한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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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문화일보 주최로 열린 문화미래리포트2024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인사 뒤 행사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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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 ‘벌거벗은 임금님’이 저랬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정브리핑·기자회견을 한 지 닷새째, 세상엔 조소(嘲笑)와 분통이 쌓여간다. 지금 응급실 뺑뺑이, 진료 셧다운, 격감한 장기이식 수술은 숫자로나마 잡히는 쪽이다. 병원 가는 고통·설움이 저 난리인데, 대통령은 고개 숙이고 말이나 말지, 원활하다고 염장 질렀다. ‘바보 소리’ 듣고 말 작정이었나. 광복절 대혼란을 겪고도 뉴라이트를 “모른다” 했고, 내수·세수·가계빚·집값 빨간불인데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했다. 대통령 전화 후 180도 바뀐 채 해병 수사는 외압 없는 게 “드러났다” 설레발치고, 정기국회 코앞에 협치는 또 퉁쳤다.

이 모든 말이 125분간 쏟아진 그날, 조선일보는 사설을 쓰지 않았다. 국정 훈계·걱정·조언에 여념 없던 그 논설실 메시지는 답답했거나 무시했거나 화났거나, 유구무언(有口無言)이었다. 전화 너머 친구도 “윤석열이 윤석열 했다”고 놀라지 않는다. 그 ‘윤석열’은 아집 센 독불장군이다. “대파 875원이 합리적”이라 했다가 총선 망치고도 달라진 게 없다. 대통령이 의료대란까지 가짜뉴스 취급하려 한 그 순간, 민심은 싸늘히 닫혔다.

그 숫자다.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한 주 새 급락했다. 한국갤럽(8월30일)은 23%로 4%포인트 곤두박질쳤고, 리얼미터(9월2일)는 2년 만에 30%가 깨졌다. 삼척동자도 안다. 그 90%는 윤석열·김건희 업보다. 물가·금리로 허걱대는데, 용산 관저엔 사우나·드레스룸을 증축했단다. 술 좋아하는 대통령, 해외 가서도 명품숍 다니고 명품백 선물 받는 대통령부인이 사는 집이다. 검찰로 기둥 세운 나라엔 뉴라이트 꽃이 만발했다. 공영방송 장악에 혈안이 된 2인 방통위, ‘느림보’ 탄소감축계획은 사법 철퇴를 맞았다. 집권 전반기 폭주와 퇴행을 세운 판결이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아랑곳없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 임기말 역사와 대화하려는 대통령 폼이다. 저잣거리엔 ‘지·포·대’란 속어가 움텄다. 지지율을 포기한 대통령이다.

정치가 꿈틀댄다. 여권에선 한동훈의 ‘2026년 의대 증원 유예안’이 시발탄이다. 대통령이 일축하고 만찬을 미루자, 한동훈도 “대안 있느냐?”고 되묻는다. 1월에 김건희 명품백 문제 삼다 90도 인사하고 바로 접을 때와 다르다. 인기 없는 대통령을 향해 ‘한동훈 정치’가 한 뼘 더 도발한 격이다.

한동훈은 ‘술 안 먹는 윤석열’로 불린다. 이 검찰국가의 황태자였다. 49세 한동훈을 법무장관에 발탁하고, 여당 비대위원장에 조기 투입할 때, 대통령은 ‘검사동일체’가 ‘국정동일체’로 가길 원했을 게다. 목도하듯, 그것은 깨졌다. 용산과 여의도로, 현재와 미래로, 세력과 세력 대치로 갈렸다. 한동훈의 꿈은 대권이다. 하나, ‘윤석열의 아바타’가 ‘지지율 낮은 검찰국가’에서 ‘또 검사대통령’이 되겠다니, 그 허들이 녹록할 리 없다. 이런 반전과 역설이 없다.

어느덧 8번째, 여권의 대선엔 경험칙들이 생겼다. ①대통령과 가까운 총리(고건·이낙연)는 꿈을 못 이뤘고 ②대통령과 싸운 당대표(이회창·정동영·김무성)도 실패했고 ③‘믿고 이길 수도 있는 후보’를 찾은 대통령도 없었다. 만들긴 어려워도 고춧가루 뿌릴 수 있는 게 대통령이다. 반대로, 대통령이 밟고가라 하고 차별화(정권교체 상쇄) 효과도 준 여권 주자는 승리했다. 노태우 뒤 김영삼, 김대중 뒤 노무현, 이명박 뒤 박근혜가 그랬다. 지도자·발광체로 서고, 무색무취하지 않고, 국민 선택을 받는 것, 결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잣대로 복기한다. 득표(62%)는 높아도, 한동훈의 7월 전대는 ‘친윤 원희룡·김건희 댓글’과 맞선 혈전이었다. 한동훈은 제3자 추천 채 상병 특검법을 직접 발의하겠다고 포효했다. 대표수락연설에선 “국민 눈높이에 더 반응하자”고 외쳤다. 그 후 대표 한동훈은 다른 사람이다. 특검법은 핑계가 늘고, ‘중(도)·수(도권)·청(년)’도 등돌린 김문수·이진숙·뉴라이트 인사에 침묵했다. 그러곤 이재명을 만나 “내 처지가 그렇다”니, 대표 나설 땐 소수파, 원외, 대통령과의 불화일 줄 몰랐나. 멈칫한 8월, 한동훈은 공언한 새 정치·큰 정치에서 멀어졌다.

두 칼의 기억이 크다. 김훈 소설 <칼의 노래>에선 번뇌의 칼을 봤다. 왜적과의 해전, 혼군(昏君) 선조의 무능한 정치, 고단한 민초들이 떠오를 때 이순신의 방 윗목에서 떨고 가슴에서 울던 칼이다. 또 하나는 카툰 <윤석열차>에 탄 검사들이 치켜든 권력의 칼이다. ‘칼잡이’ 한동훈이 ‘지도자’를 희망해도, 그 답은 까탈스러운 국민이 정한다. 7월의 결기인가. 8월의 엉거주춤인가. 번뇌의 칼인가. 권력의 칼인가. 베여도 수그려도 큰 미래는 없다. 지지율 포기한 윤석열과 차별화 급한 한동훈 내전이 이제 가을로 가고 있다.

경향신문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이기수 편집인·논설주간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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