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 등을 태우고 교토 앞바다에서 폭침한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 한겨레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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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24일 일본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가 교토 앞바다에서 폭발을 일으켜 침몰했다. 배에는 광복을 맞아 고향에 돌아가려던 강제동원 피해자 등 많은 한국인이 타고 있었다. 일본은 배가 바닷속 기뢰를 건드려 폭발했다고 했지만 유족들은 일본이 고의로 배를 폭파했다며 진상 규명을 요구해왔다. 비극이 일어난 지 79년 만에, 일본이 승선자 명부 일부를 5일 처음으로 우리 정부에 내놓았다.
일본은 내부조사를 마친 19건의 자료를 이날 도쿄의 주일대사관에 우선 제공하고, 다른 승선자 명부 자료도 내부조사가 완료되는 대로 제공하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일본 정부는 우키시마호 승선 명부 관련 자료가 70종 안팎이라고 밝혀왔는데, 이번에 정부가 받은 19건에 몇명의 인적 정보가 들어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17년 동안 양국 간에 교섭이 진행되어왔다”며 “현재 한-일 관계가 좋은 상황에서 일본과 긴밀히 협의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이번에 받은 게 전체 명단은 아니지만, 추가로 협의를 통해 계속 받을 예정”이라고 했다.
유족과 관련단체의 진상 규명 및 명부 공개 요구를 외면해온 일본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방한 전날 ‘선물’처럼 명부를 내놓은 것은 씁쓸하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승선자 명부의 존재에 대해서도 숨겨오다가 지난 5월 처음으로 명부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승선자 명부는 옛 일본 해군이 갖고 있던 것을 후생노동성이 물려받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침몰로 유실됐다’고 우겨오다 일본 독립 언론인 후세 유진의 끈질긴 노력으로 그 존재가 확인됐다.
우키시마 유족회 한영용 회장이 올해 7월 일본 사회당으로부터 받은 우키시마호 승선자 명부 일부의 복사본. 한영용 회장 제공 |
우키시마호 승선자 수를 두고 일본 정부는 3700여명, 유족들은 1만2천명이라고 주장한다. 우키시마호 유족회 한영용(82) 회장은 이날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아직 (명부를 받는 것에 대해) 외교부로부터 아무런 연락도 못 받았다”며 “내가 그 명부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대통령, 외교부 장관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정부가 빨리 받아서 유족들에게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27살 때 강제동원된 그의 아버지 고 한석희씨는 우키시마호를 타고 귀국하려다 희생됐다. 당시 세살이었던 한 회장은 1970년부터 지금까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나도 곧 아버지한테로 갈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아버지한테 명부도 유골도 찾아놓고 왔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정부가 더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정부는 이 명부를 피해자 구제와 우키시마호 사건의 진상 파악 등에 활용할 예정이다. 근거자료 부재 등으로 위로금 신청을 기각·각하당한 희생자 유족의 재심의 등에도 활용된다고 한다. 다만 외교부는 자료 전체를 공개하지 않고 국내법령에 따라 정보를 열람 또는 제공받을 권리가 있는 이에게만 제공할 예정이다. 희생자의 개인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다는 이유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보상 소송을 대리해온 최봉태 변호사는 “유족들은 명부에 자기 가족의 이름이 있는지도 알 수 없는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이름은 전체를 최대한 신속히 공개해 유족들이 확인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기시다 방한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려고 생색을 내는 것이지만, 여기서 끝내지 말고 자료 존재를 감춰온 것에 대해 반드시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고 진상 규명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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