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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카페 2030] ‘웰컴 키즈존’에도 예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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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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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태어난 후 함께 갈 식당을 고를 때 ‘노키즈존’ 여부를 먼저 확인한다. 비용을 조금 더 내더라도 방이 있으면 방을 예약한다. 아직 한 살밖에 안 된 아이가 갑자기 크게 소리 지르거나 울 수 있어 취하는 나름의 ‘안전장치’다. 그러나 이렇게 가도 “죄송하다”는 말을 안 하는 날은 없다. 몇 번 했느냐, 얼마나 자주 했느냐 정도의 차이다. 오늘은 또 어떤 예상치 못한 민폐를 저지를까 불안해하며 가게 문을 열곤 한다.

식당 예약 앱(APP)이 좋아진 요즘엔 애초 ‘웰컴 키즈존’으로 등록한 곳만 골라서 볼 수 있다. 지난 주말 아이를 데리고 간 식당도 ‘웰컴 키즈존’이었다. 앱에 적힌 식당 소개글에 “우리 업장은 아이 손님을 환영합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평도 좋았다. 따로 방이 없어 홀로 예약하고 시간 맞춰 식당에 갔다. 우리 테이블에 아기 의자와 아기용 수저·집기가 준비돼 있었다. 가게를 둘러보니 아이를 데리고 온 손님이 많았다.

사달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테이블에서 났다. 네다섯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가 식당을 그야말로 헤집고 돌아다녔다. 부모 중 누구도 제지하지 않았다. 몇 번 “그만해” 하며 소리치긴 했지만, 아이는 그런 꾸지람에 익숙한 듯 대꾸 없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신발을 신은 채로 의자를 밟고 올라가기도 했다. 종업원이 눈치를 줬지만 부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 테이블이 나갈 때까지 그 가족의 식사 전 과정을 가게 안 모든 손님들이 바라봤다. 나갈 때까지 한 번도 “죄송하다”는 말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올 초 프랑스 매체 ‘르몽드’는 ‘한국에서 카페와 레스토랑에 노키즈존이 성행하고 있다’는 기사에서 작년 5월 기준 우리나라에 노키즈존이 542곳에 달한다고 소개하면서 “인구가 감소하는 국가에서 이런 현상은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우리 사회가 “집단 간 배제,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는 한 교수의 견해도 소개했다. 그러나 ‘노키즈존’을 ‘저출생’으로 연결지어 설명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아이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작은 손짓이나 웃음에도 화답해주는 게 보통의 사람들이다. ‘노키즈존’의 핵심은 무례함을 권리로 착각하는 일부 몰지각한 부모의 ‘결례의 일상화’가 아닐까.

보건복지부가 작년 12월 ‘노키즈존’을 운영 중인 사업주 205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노키즈존 운영 사유로 ‘아동 안전사고 발생 시 사업주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해서’(68%), ‘소란스러운 아동으로 인해 다른 손님과 마찰이 발생할까 봐’(35.8%), ‘조용한 가게 분위기를 원해서’(35.2%), ‘자녀를 잘 돌보지 못하는 부모와 마찰을 일으킬까 봐’(28.1%) 순으로 나타났다. 답변 내용은 다양하지만, 결국 ‘자녀를 방치하는 부모 탓’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노키즈존’ 식당이 피하고 싶은 것은 사실 ‘아이’가 아니라 ‘그 아이의 부모’일 것이다. ‘웰컴 키즈존’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지인이 참다 참다 진상 손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아이는 그래도 돼요. 그런데 부모는 그러면 안 되죠.”

[박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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