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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연금 자동 조정 장치, 고갈 시점 16년 늦춰” 對 “받는 돈 17% 깎자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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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의 뉴스 읽기] 이슈로 등장한 ‘자동 조정 장치’

조선일보

그래픽=김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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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4일 국민연금 개혁안에서 제시한 ‘자동 조정 장치’가 이슈로 등장했다. 이 장치는 연금 제도가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구조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가입자 수와 수명 변화를 반영해 기존 수급자의 연금액을 조정하는 방안이다.

◇인구·수명에 따라 자동 조정

현재 국민연금은 수급자의 연금액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매년 더하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자동 조정 장치는 여기에 ‘최근 3년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과 ‘기대여명(특정 나이 사람이 몇 살까지 더 살 수 있는지 가능한 햇수) 증감률’을 반영해 연금액을 추가로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존 연금액이 100만원이고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5%라면 현행 방식은 기존 연금액에 5% 더한 105만원으로 오른다. 그런데 자동 조정 장치가 작동할 경우 가입자 수가 1.0% 줄고, 기대여명이 0.5% 늘었다면 물가상승률 5%에서 두 수치(1.0%, 0.5%)의 합을 빼고 3.5%만 인상해 103만5000원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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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24국이 연금제도에 이런 장치를 두고 있다. 저출산이나 경기 불황 등이 이어질 경우 연금액을 자동으로 낮춰 급격한 연금 소진을 막기 위한 장치다. 연금 수급액을 정치적 논의나 정부 결정에 따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변수에 따라 조정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투명하고 환경 변화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각국이 운영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르다. 스웨덴은 연금 부채가 자산보다 커질 경우 연금액을 조정하는 방식이고, 독일은 전체 경제활동인구와 연금 수급자 규모의 변화(제도 부양비)를 바탕으로 급여 수준과 보험료율을 자동 조정하고 있다. 반면 핀란드처럼 기대여명이 증가하면 연금액과 수급 개시 연령을 조절하게 설계한 방식도 있다. 4일 정부가 내놓은 방식은 일본이 가동 중인 일명 ‘거시경제 슬라이드’ 방식과 비슷하다. 일본은 지난 2004년 연금액을 기대수명 연장과 출산율 감소에 연동해 삭감하는 자동 조정 장치를 도입했다.

◇작은 수치라도 쌓이면 위력

물가상승률에서 1~2% 깎는 것이 작아 보이지만 복리처럼 여러 해 쌓이면 상당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복지부는 이번 개혁안에서 보험료율을 13%, 소득대체율을 42%로 올리면 기금 고갈 시점을 2056년에서 2072년으로 16년 연장할 수 있지만, 2036년에 자동 조정 장치까지 도입하면 기금 소진 시점을 2088년으로 32년 늦출 수 있다고 했다. 거칠게 표현하면 내는 돈, 받는 돈 조정으로 16년, 자동 조정 장치로 16년 소진 시점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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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다른 모의실험 결과도 있다. 국민연금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보험료율을 15%로 올리고 일본식 자동 조정 장치를 적용할 경우, 기금 예상 고갈 시점을 현재 예상 시점인 2055년보다 38년을 늦출 수 있다. 보험료율만 15%까지 인상할 경우 기금 소진 시점은 2071년인데, 이보다 22년 더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1인당 급여 변화는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소득자’를 기준으로 할 때 2030년 신규 수급자가 월 83만8000원에서 82만5000원으로, 2050년 신규 수급자의 경우 167만4000원에서 164만7000원으로 각각 1만3000원, 2만7000원 낮아진다는 것이 국민연금연구원 보고서 내용이다. 1.6% 정도 줄어드는 데 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 보고서를 토대로 “2030년 신규 수급자 기준으로 연금 수급 총액의 17% 가까이 깎인다”며 자동 조정 장치 도입에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 조정 장치를 2025년 도입할 경우, 2030년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수급자의 생애 총급여는 제도 적용 전 1억2675만원에서 적용 후 1억541만원으로 16.8%(2134만원) 줄었다. 같은 조건에서 2050년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수급자의 생애 총 급여는 1억2035만원에서 9991만원으로 17%(2044만원) 감소했다. 설계에 따라 자칫 연금액이 대폭 깎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올만 한 결과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동 조정 장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하고 계수(係數)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스란 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장은 “가입자가 계속 줄고, 기대여명이 더 늘어도 본인이 낸 것만큼은 돌려준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연금액) 최저한은 있고, 전년도 받은 돈보다 그해 받을 연금액이 적어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 실장은 “물가 상승분을 다 적용하지 않으면 실질 가치만큼은 보전되지 않는 문제는 있다”며 “하지만 자동 조정 장치는 지속 가능성을 위해 부담을 서로 나눠야 한다는 취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입해야 할 제도” 대 “시기상조”

자동 조정 장치 도입에 대해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도입해야 할 제도로, 방향은 불가피하다”고 했다. 연금 전문가인 윤희숙 전 의원도 “자동 조정 장치가 개념적으로는 우수한 장치”라고 말했다.

다만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소득대체율이 높지 않은데 자동 조정 장치를 도입하면 노후 소득인 연금액이 지나치게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자동 조정 장치는 보험료율이 거의 20%에 달하는 서구 국가에서 도입한 장치”라며 “우리는 보험료율 등 인상 여지가 아직 넉넉하기 때문에 당장 도입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연구원 성혜영 연구위원은 “보험료율을 다 올리고 자동 조정 장치로 도입한다는 건 잘못 알려진 얘기”이라며 “대부분 국가가 연금 개혁을 할 때 보험료율 인상과 자동 조정 장치를 도입을 동시에 추진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2004년 연금 보험료율을 13.9%에서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18.3%까지 올리면서 자동 조정 장치를 같이 도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치를 도입하면 기금 소진이 늦춰지겠지만, 소득 보장 수준이 달라질 수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장치를 당장 도입하자는 것보다는 도입 논의를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복지부가 제시하는 발동 시점도 가장 가까운 시점이 2036년(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넘어서는 해)이기 때문에 아직 논의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부부 기초연금 64만원,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과 같아져

정부는 이번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면서 현재 월 33만원 수준인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2026년 기준 중위 소득 50% 이하를 대상으로 올린 다음 2027년 전체 대상자(소득 하위 70%)로 확대하겠다고 했다.

이 발표를 두고 아쉬워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다. 이번에 연금 구조 개혁 방안을 내놓겠다고 해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관계 재설정 방안이나 기초연금 대상자를 점차 줄여나가는 방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중에서 소득 하위 70%로 지급 대상을 고정해 놓은 현행 기초연금 제도는 현실적으로 지속하기가 어려운 구조다. 노령화로 전체 노인 인구가 급격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65세에 진입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소득·자산 수준이 높아져 기초연금을 주어야 하느냐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소득 하위 70%를 선정하는 기준인 소득 인정액이 15년 전 월 68만원에서 올해 그 3배가량인 213만원으로 올랐다. 이 수치는 여러 가지를 공제한 소득 인정액 기준이기 때문에 실제 기초연금을 받는 사람의 소득·재산 수준은 이보다 훨씬 높을 수밖에 없다. 근로소득만 있을 경우 부부가 706만9000원을 벌어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현행의 ‘65세 이상 70%’인 기준을 ‘일정 소득 이하’로 바꿔 점차 대상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런 개선 방안은 나오지 않은 것이다.

기초연금 예산(국비+지방비)은 올해 24조4000억원으로, 10년 전 6조9000억원의 3.5배로 급증했다. 우리나라 복지 사업 중 가장 많은 금액이다. 이 액수가 2026년엔 31조5000억원으로, 2027년 33조8000억원으로 늘어난다.

국민연금 관계도 문제다.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올리면 부부는 20% 감액하더라도 64만원을 받는다. 이는 평생 보험료를 낸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 수급액 64만2320원과 차이가 없다. 국민연금 가입 동기가 현저히 약해질 수밖에 없다. 윤희숙 전 의원은 “기초연금은 손봐야 할 부분이 많고 복지부도 많이 준비한 것으로 아는데, 이번 발표에서 기초연금 제도는 건드리지 않은 것은 뼈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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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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