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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삼성 수동공정 직원 79% “근골격계 질환”…산재신청 14년간 1건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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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삼성전자 기흥사업장 8인치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생리휴가, 연차유급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다 수작업이 많아 강한 노동강도로 퇴행성관절염, 손목터널증후군, 하지정맥류 등 육체적 질환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은 이들의 실제 손가락.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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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일하는 ㄱ씨는 최근 “손목이 타들어가는 통증”을 동반하는 손목터널증후군 악화로 수술을 받았다. 20년 가까이 약 3㎏의 웨이퍼뭉치(롯)를, 손으로 하루 400여번 옮기다 얻은 병이다. ㄱ씨는 두달 병가를 냈지만, 산업재해(산재)는 신청하지 못했다. 그는 “관리자에게 산재신청을 문의하니 ‘회사가 지원한 의료비를 반납해야 하고 신청 절차가 복잡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혹시나 인사평가 때 불이익을 받을까 봐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ㄱ씨처럼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 가운데 가장 노후한 기흥사업장의 8인치 생산라인(6~8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 대부분이 근골격계 질환 등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 노동자들은 노후 설비 탓에 수작업을 많이 하다가 얻은 손가락 변형 등 각종 질환을 앓는다는 사실이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파업 과정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5일 전삼노가 7월24일~8월12일 기흥사업장 제조직군 노동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136명 중 107명(78.7%)이 “근골격계 질환을 진단받았다”고 답했다. 응답자 가운데 91.2%인 124명은 8인치 라인 노동자들이었다. 전삼노 관계자는 “수동 공정 제조직군 노동자는 1200여명”이라며 “노후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 10%가 조사에 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겪은 질환으로는 손목터널증후군(복수응답·38.2%)이 가장 많았고 허리디스크(29.4%), 손가락관절염(16.9%) 등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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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산재신청은 거의 없었다. 삼성전자 쪽은 “2010년 이후 8인치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골격계 질환을 이유로 한 산재신청은 1건”이라고 설명한다. 사흘을 초과하는 요양이 필요한 업무상 사고·질병은 산재신청이 가능하다.



응답자 95명(복수응답·69.9%)은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했다. 입사 5년차 ㄴ씨는 “일하다 사고로 다치면 산재신청하는 줄 알았지, 허리디스크 같은 질병이 산재가 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다음 이유로는 ‘절차가 어려워서’(36.8%), ‘불이익 우려’(36.0%) 등이 꼽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입사 때 산재신청 절차 등을 교육하는 것은 물론 이후에도 온라인 산업안전보건교육에서 교육하고 있다”며 “인트라넷과 사내병원, 근골격계질환센터 등에 안내 자료도 비치해두고 있다”고 밝혔다. 또 “산재 관련 문의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접수 채널도 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는 노동자들은 모르는 경우가 있었다. ㄱ씨는 “근무시간 중 별도 교육시간이 없고 근무시간엔 바빠서 진득하니 앉아 교육받기 힘들다”며 “집에서는 (회사망에 접속할 수 없어) 교육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이익 우려도 영향을 미쳤다. 15년차 ㄷ씨는 “일하다 사고 나면 경위를 보고해야 하고, 내 잘못이 아닌데도 책임을 추궁받는다”며 “관리자들도 보고나 향후 인사평가 부담 때문인지 사고나 산재신청에 대해 민감해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을 포함해 직원들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도 산재신청을 주저하는 이유가 된다. 번거로운 산재신청보다 간편한 의료비 지원을 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산재 승인을 받는 것이 노동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향후 해당 질환이 재발할 경우 산재 승인 이력이 있다면 퇴사 이후에도 재요양(급여)을 신청·승인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동희 노무사(법률사무소 일과사람)는 “공상 처리(회사가 의료비 지급)한다면 해당 질병이 업무상 질병인지 개인 질환인지 알 수 없게 된다”며 “회사가 작업 환경을 개선해 산재를 예방할 계기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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