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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금융포커스] ‘오락가락’ 이복현 말에 은행은 ‘좌충우돌’… 실수요자만 속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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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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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의 말 한마디에 시시각각 대출 정책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 원장의 오락가락하는 대출규제 발언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까지 이 원장을 겨냥하고 나섰습니다. 금융 당국과 은행권 사이의 혼란이 이어지면서 그 피해는 고객에게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원장은 오는 10일 오전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시중은행장들과 간담회를 가집니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갭투자(전세 낀 주택매입) 등 투기 수요 대출 심사를 강화하면서도 대출 실수요자는 대출에 제약을 받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둘 것으로 보입니다. 또 은행마다 제각각인 대출 정책도 조율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이 원장의 말 한마디에 대출정책이 시시각각 바뀌고 있습니다. 지난달 2일 이 원장은 금감원 임원 회의를 통해 “무리한 대출 확대가 가계부채 문제를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금감원은 다음 날 17개 국내은행 부행장과 간담회를 열고 “가계대출 현장 점검을 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이 원장의 발언 후 은행권에서는 금리를 잇달아 인상했습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지난 7월부터 금리를 인상한 횟수만 22차례에 달합니다.

그러나 이 원장은 지난달 25일 “대출 금리 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은행에 대한)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금감원은 지난달 27일 “실수요자에게는 필요한 대출을 내줘 불편을 최소화하면서 급하지 않은 대출을 억제할 수 있도록 여신심사를 강화해 달라”고 금융권에 당부했습니다. 이후 은행권에선 대출 축소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우리은행을 시작으로 국민은행과 케이뱅크는 1주택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제한하는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일부 은행은 전세대출, 신용대출 한도와 대상을 축소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은행권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수요를 억누르기 위해 은행이 할 수 있는 건 금리를 인상하거나 대출을 죄는 것밖에 없다”며 “가계대출 관리는 단순히 신규대출을 규제하는 걸 넘어 부동산 시장 관리 등 전방위적인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지금은 은행 팔만 비틀고 있는 꼴이다”라고 토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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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환 금융위원장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가계부채 관리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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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장의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은 점도 불만입니다. 지난 4일 이 원장은 가계대출 실수요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가계부채 관리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실수요자들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발언을 두고 은행권에서는 실수요자의 불이익 최소화 방안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실수요인지 투기적 수요인지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은 실수요자에 대해 정의를 내려줄 필요가 있다”며 “고객들은 각자 상황에 따라 실수요라고 주장할 텐데 앞으로 어떻게 대출 정책을 짜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금융 당국과 은행권 사이 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결국 그 피해는 고객에게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조건부 전세자금 대출이 대표적입니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소유권 이전과 동시에 이뤄지는 조건부 전세대출이 갭투자에 악용될 수 있다며 막아버렸습니다. 이 은행들은 일반 분양자가 이미 잔금을 다 치렀다고 해도 소유권 이전 등기가 안 돼 있다면 세입자에게 대출을 내주지 않는다는 방침입니다. 반면 농협은행은 대출 실행 전까지 분양대금이 완납된 경우에만 전세대출을 내주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부 고객은 ‘은행 뺑뺑이’를 돌고 있습니다.

이 원장의 오락가락 메시지에 시장 혼란이 가중되자 금융위가 나섰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가계부채 관련 브리핑을 열고 “정부가 획일적인 기준을 정할 경우 오히려 국민 불편이 더 커질 수 있다”며 “개별 금융회사가 리스크 수준, 차주(돈 빌리는 사람)의 특성 등을 스스로 평가해서 투기적 수요를 제한하는 등 상황에 맞게 관리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최근 이 원장이 은행들의 개별 대출 정책 하나하나에 개입하며 시장에 혼란을 주자 가계대출의 주무부처인 금융위가 정부 당국의 통일된 목소리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 교수는 “지금까지 대출 정책을 살펴보면 한쪽은 특례보금자리론, 신생아 특례대출을 비롯한 정책금융상품을 적극적으로 내놓는 등 부동산 시장을 부양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고 다른 쪽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강화하는 등 제각각이다”라며 “가계대출 정책이 상황과 부처에 따라 바뀌면 정책 효과가 떨어지는 만큼 실수요자 피해를 줄이려면 당국의 일관된 정책 기조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수정 기자(revis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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