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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6 (월)

햄스터, 개구리, 달팽이, 지네… 장례식장 주인공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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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1㎏ 미만 반려동물

小동물 장례식 확산

상주(喪主)는 향에 불을 붙이며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영정 사진 속에는 반려 개구리가 눈알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이 아닌 개구리, 물가에 사는 그 양서류 개구리다. 2년 5개월간 함께했으나 병으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보호자 서진영(32)씨는 “차마 차가운 땅에 묻을 수도 냉동실에 넣을 수도 없었다”며 “온전한 모습일 때 가능한 한 빨리 화장(火葬)을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집 근처 서울 가산동의 소(小)동물 전문 장례식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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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개구리를 위해 꾸려진 제단. 초록색 개구리는 작은 상자 안에 잠들어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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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관(棺)에 개구리를 눕혔다. 소요 시간만 짧을 뿐 장례 절차는 사람과 비슷했다. 염습, 추모, 발인. 업체에 따라 몸매에 맞는 특수 수의를 제작해 입히는 경우도 있다. 전문 장례지도사와 함께 기도문을 낭독하고, 이별의 눈맞춤을 나눈 뒤, 개구리는 화장로(火葬爐)에 들어갔다. 1시간쯤 지나 뼛가루가 작은 유골함에 담겼다. 서씨는 “종류가 어떻든 크기가 크든 작든 내 소중한 가족이었다”며 “장례 과정을 통해 슬픔이 가라앉았고 마음 편히 보내줄 수 있었다”고 했다.

◇가족, 종량제 봉투에는 못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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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 달팽이(아프리카왕달팽이) 장례식장 풍경. 생전의 건강한 모습을 화면에 띄우고 영정 사진도 준비했다. 장례지도사 우측에 사체가 놓여 있다.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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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정(22)씨에게는 “아들처럼 키운” 반려 달팽이가 있었다. 아프리카 왕달팽이. 돌본 지 3년이 흘러 손바닥을 덮을 만큼 자란 이 반려와(蝸)는 지난해 10월 세상을 떴다. 신씨는 “처음엔 다른 분들처럼 삶아서 껍데기만 보관하거나 화분에 묻으려 했는데 나중에 속상할 것 같았다”며 “햄스터 장례식장이 있다는 걸 듣고 달팽이도 가능할 것 같아 찾아갔다”고 말했다. 경기도 일산의 한 소동물 장례식장에서 장례를 진행했고, 다행히 유골(패각)을 남길 수 있었다. “집에 보관하고 있어요. 먼 훗날 제 관에 함께 넣어달라고 할 거예요.”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 시대. 규모가 커지며 종류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오픈서베이가 발표한 ‘반려동물 트렌드 리포트 2024′에 따르면 양육 반려동물 순위는 개, 고양이, 물고기, 햄스터, 거북이, 달팽이, 앵무새, 도마뱀 순으로 조사됐다. 사랑받는 존재, 이들의 ‘마지막’도 달라지고 있다. 현행법상 반려동물의 사체를 땅에 묻는 건 불법이기에 동물병원에 맡기거나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한다. 다소 냉정한 방식이다. “격식 갖춰 제대로 보내 주련다”는 보호자들이 증가하는 이유다. 소동물·특수동물 등 세분화된 전문 장례업체만 전국에 10곳을 넘겼다. KB금융 ‘2023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서는 양육 가구의 64.5%가 장묘 시설 이용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 喪主 증가… 유골은 보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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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로에 들어가 한 줌 가루가 되기 전, 수의를 입은채 꽃에 둘러싸여 있는 반려 고슴도치. /씨엘로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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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물은 보통 무게 1㎏ 미만의 반려동물을 일컫는다. 반려동물 장례 업체 ‘21그램’ 함지윤(33) 장례지도사는 “고객의 반려동물 중에는 고슴도치·거북이·금붕어·뱀, 심지어 지네도 있었다”며 “소동물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관심과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고 말했다. 화장로의 화력을 약하게 조절해 유골이 흩어지지 않게 신경 쓰고, 장례용품도 그들의 사이즈에 맞춘다. 함 지도사는 “물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보호자들에게는 강아지·고양이와 다를 바 없는 가족”이라며 “자택에 가져가면 볼 때마다 눈물 날 것 같다고 봉안당에 유골함을 보관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소동물 장례는 특히 젊은 세대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반려동물 장례 업체 ‘포포즈’ 최호연(27) 장례지도사는 “대개 보호자 연령대가 어린 편인데 최근에는 용돈을 털어 반려동물 장례식을 치러준 중학생도 있었다”며 “아무래도 장례식장이다 보니 분위기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 어린 보호자가 부모님과 함께 와서 화기애애하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비용은 15만~20만원 수준. 20대 고객들은 유골을 고온 압축해 메모리얼스톤 등의 보석으로 만들어 보관하거나 목걸이처럼 장신구로 착용하는 비율이 높다고 한다.

◇반려동물 장례 지원, 지자체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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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지자체도 이런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전북 임실군은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공공 동물 장묘 시설 ‘오수 펫 추모공원’을 2021년 개장했다. 연면적 876㎡ 규모로 화장로 3기, 추모 시설, 수목 장지까지 갖췄다. 올해부터는 고슴도치·토끼·금붕어·이구아나 등의 소동물 전용 서비스도 시작했다. 반려동물을 잃고 실의에 빠진 보호자를 위한 상담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불길에 휩싸인 주인을 제 몸을 바쳐 구한 의견(義犬) 오수개의 고장. 이 같은 시설과 스토리텔링으로 일대를 반려동물 특화 관광지로 조성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서울시는 지난 1월 경기도 연천군과 ‘서울 반려동물 테마파크·추모관 조성을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했다. 테마파크 인근 5000㎡ 부지에 화장장과 봉안당 등의 시설을 갖춰 시민들이 근교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계획이다. 경기도는 지난 3월 ‘동물복지·반려동물 추진 계획’을 발표해 저소득층·중증 장애인 및 한부모 가정·다문화가족, 그리고 1인 가구가 키우는 반려동물(내장형 마이크로칩 등록)에 한해 의료비와 장례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마리당 최대 16만원씩 총 800마리. “사회적 배려 계층의 부담은 줄이고 반려동물 복지 개선 효과는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묻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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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담긴 작은 관을 장례지도사들이 화장로에 넣고 있다. /21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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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는 원래 사람을 위한 것. 반려동물 장례식은 인구 감소와 맞물리는 현상이다. 반려동물의 득세는 인간 가족이 줄고 인간관계에 대한 중요도가 예전만 못한 배경에서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사람의 장례는 간소화되고 있다. 고인 사망 시 조문객을 받지 않고 안치실과 입관실 사용료만 내는 ‘무(無)빈소 장례’, 빈소는 하루만 차리고 다음 날 화장하는 ‘하루장’ 등이다. 노후와 죽음에 관해 우리보다 한발 앞선 일본에서는 1인 가구 증가 같은 이유로 장례식 없이 사후 곧장 화장하는 ‘직장(直葬)’도 증가 추세다.

반려동물과 합장(合葬)할 수 있는 묘원도 속속 개장하고 있다. ‘위드펫’ 서비스를 운영하는 일본 장례 업체 메모리얼아트 오노야 측은 “함께 살았던 반려동물과 잠들고 싶다는 목소리에서 비롯된 무덤”이라며 “점차 유대가 강해지는 사람과 동물의 공생 관계를 영원히 하는 새로운 스타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개·고양이뿐 아니라 족제비 등의 반려동물이 함께 묻히고 있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본 불교계에서는 합장한 동물도 과연 극락왕생할 수 있는지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생(畜生)의 재해석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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