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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3 (일)

엘베 무허가 전단지 뗐다고 재물손괴?…"처벌 안 받을 사람 없다" [법잇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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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다수 "무용한 소송 난립…불송치 처분 마땅"

국민 법 감정 맞지 않고 되레 거울 효용 침해 소지

경기 용인시의 한 아파트 승강기 내 거울에 붙어있던 비인가 게시물을 떼어낸 여중생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이 보완 수사를 결정하며 혐의 성립 요건을 다시 살피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소까지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

해당 사건은 용인시 기흥구의 한 아파트에 사는 중학생 A양이 지난 5월11일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기 집으로 향하던 중 거울에 붙어있는 비인가 게시물을 뜯으며 발생했다. 경찰은 A양의 행위가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고 보고 검찰에 송치했다.

세계일보

지난 5월11일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에 붙어있는 비인가 전단지를 떼는 중학생의 모습. JTBC 보도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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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건이 알려지자 용인동부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수사를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용인동부서의 판단에 추가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고 판단, 검찰과 협의해 보완 수사를 결정했다. 사건을 다시 돌려받은 용인동부서는 A양의 행위가 재물손괴 혐의의 성립요건에 부합하는지를 다각도로 살피고 있다.

전문가들도 국민 법 감정에 맞지 않는 법 적용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승우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는 “법리적으로 일단 게시물 자체에 적법한 허가가 없었던 만큼 재물손괴죄에서 말하는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을 여지가 있고, 정당행위로 볼 여지 또한 있어 위법성에서 조각될 가능성이 있다”며 “복잡한 법리를 떠나서 외부인도 아니고 거주민이 무허가 전단지 하나 제거했다고 하여 처벌한다고 하면, 국민의 법 감정에 반할 수 있다. 무용한 소송이 난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 사안은 불송치 처분을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손괴죄가 성립하려면 손괴의 고의가 있어야 하는데, 고의의 측면에서도 거울을 가리게 하여 입주민들의 공동재산인 거울의 효용을 침해한 것은 오히려 해당 전단지를 붙인 주체다”며 “경찰 해당 수사팀은 공동주택 관련 판례를 검토했다고 하였으나 손괴의 고의가 있는지를 따지는데 먼저 거울의 효용을 침해한 부착한 주체의 행동은 고려하지 않는 기본적인 판단에서 빈틈이 있었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 안영림 법무법인 선승 변호사는 “형식적인 법 적용에 대한 비판이 많은 만큼 보완 수사 혹은 검찰의 직접 수사를 통해 혐의없음 또는 기소유예로 결론이 나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밝혔다.

앞서 해당 게시물은 아파트 내 주민 자치 조직이 하자보수에 대한 주민 의견을 모으기 위해 부착한 것으로, 관리사무소로부터 게재 인가를 받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2022년 적법하게 게시물을 철거하기 위해선 부착한 주체에게 자진 철거를 청구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해 강제집행을 해야 한다는 평택지원의 공동주택관리법 판례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공동주택관리법상 게시물에 대한 조치는 관리주체의 업무에 속하지만,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지 않은 게시물에 관해 관리주체가 임의로 이를 철거할 수 있다는 하위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안경준 기자 eyewher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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