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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7 (화)

[류태형의 음악회 가는 길] 사랑받는 곳이 그의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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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음악사를 장식해온 작곡가들은 두루 사랑받는다. 그러나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기 이전에 태어난 작곡가들에게는 저마다 각별한 곳이 존재했다. 때로는 고향보다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헨델은 독일 할레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공부했지만 영국 왕실의 의뢰로 ‘앤 여왕을 위한 송가’, ‘테 데움’ 등을 작곡하며 런던을 여행하다 눌러 앉았다. 수많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관현악의 걸작을 쓰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잠들었다.

오스트리아 로라우에서 태어나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궁정악장을 지냈던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은 1791년과 1794년 두 차례 영국에 머물며 교향곡 12곡을 작곡한다. 하이든은 영국에서의 나날들을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로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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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초연된 체코 프라하의 에스타테스 극장. [체코 관광청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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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모차르트는 빈에서 활동했다. 빈에서 무시당하고 악평 받았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프라하 청중들에게 따스한 환영을 받았다. 이후 그는 ‘돈 조반니’를 프라하 에스타테스 극장에서 초연했고, 죽기 석 달 전에도 프라하를 방문했다. 모차르트는 ‘나의 프라하 사람들은 나를 잘 이해한다. 나의 오케스트라는 프라하에 있다’고 썼다. 모차르트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는 프라하에서 촬영했다. 프라하는 모차르트 이외에도 타 지역 음악가들을 품었다. 베토벤도 프라하를 두 차례 방문했고, 차이콥스키도 프라하에서 영감을 얻었다.

체코 출신의 드보르자크는 영국을 아홉 번이나 방문했고 미국 국민음악원 원장으로 초빙돼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현악 4중주 ‘아메리카’ 등을 작곡했다. 프란츠 리스트는 당대 피아노 아이돌이었다. 1846년에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 들러 몇 차례 콘서트를 열고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서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리스트 서거 100주기를 기념해 1986년 제1회 위트레흐트 리스트 콩쿠르가 열렸고, 3년마다 개최되고 있다.

1990년대 본격화한 지방자치제 이후 각 지역의 음악축제나 음악당, 음악 단체에는 혈연, 지연, 학연에 따른 연고주의가 어느 정도 작용했다. 평창, 통영, 대구, 포항 등에서 음악제의 얼굴로 동향 출신을 내세우거나 해당 시·도 출신의 음악인을 중용하는 일이 많았다. 시·도의원들은 ‘왜 우리 지역 출신들을 무대에 세우지 않느냐’로 음악축제 예산에 브레이크를 걸기도 했다. 해당 지역 연고는 매력 포인트가 될 수 있지만 그게 전부여서는 곤란하다. 지역 인구는 줄고 있고 음악 전공자는 더 귀하다. 지역을 불문하고 잘하는 아티스트를 무대에 세우는 게 먼저다. ‘내 지역 출신’과 더불어 내 지역에서 사랑받는 시그니처 음악가를 선점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전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을 듬뿍 주는 곳은 언젠가 그 음악가의 고장이 된다.

류태형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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