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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한반도 문제는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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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024 국제한반도포럼’ 개회식. 포럼 연사로 초청된 콜린 크룩스 영국 대사가 ‘패널 구성이 성평등하지 않다’며 공개적으로 참석을 거부해 한국 사회의 ‘젠더 무감각’에 경종을 울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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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통일부 주최로 열린 국제한반도포럼은 지금까지 한반도 관련 논의 구조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진보와 보수 사이의 의견 충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포럼의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었다. 포럼의 연사로 초청된 콜린 크룩스 영국 대사가 ‘패널 구성이 성평등하지 않다’며 참석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통일 독트린’에서 제시한 7가지 추진 전략 중 하나인 이번 포럼은 통일부가 국제사회에 북한 실상을 알리고 국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서 야심차게 준비한 행사였다. 그럼에도 이번 포럼에서 다뤄진 주제나 내용보다 행사에 대한 영국 대사의 ‘용기’ 있는 지적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사실 공공부문에서 여성 대표성을 제고하는 것은 인권을 내세우는 선진국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규범 중 하나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여성 대표성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특히 한반도 통일·평화 영역에서 여성들은 비가시화되거나 혹여나 존재하더라도 젠더 재현의 알리바이로 활용되어온 측면이 강했다. 여성 대표성을 보장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들에게 최소한의 기회를 주는 것을 넘어 젠더화(이분법적 성역할이 구조화된 상태)된 사회 구조를 문제시하여 성평등한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자 문화적 규범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적극적 참여를 보장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더 나아가 능력주의가 사회적 윤리가 된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여성 대표성 보장을 다시금 외치는 것은 마치 능력이 부족하고 약한 여성들의 한풀이 정도로 해석되기까지 한다.





평화·통일 담론에 ‘여성’은 투명인간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오래전부터 지속되어왔다는 사실이다. 남북대화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탈냉전 시기에 여성통일운동사는 남성 일색의 통일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기 위한 여성들의 분투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남한 여성계는 1990년대 초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대응하기 위해 남북 여성들의 행사를 기획하거나 통일을 위한 남북 여성들의 만남을 조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남북 사이의 주요 회담에 여성계를 대표하는 인사를 포함시켜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하지만 통일과 민족이라는 ‘거대한’ 주제 아래 진행되는 남북회담에 여성 참여를 요구하는 여성계의 목소리는 ‘하찮은’ 주장으로 폄하되기 일쑤였다. 과거 민주화운동 시기 진보 진영에서 통용되었던 “젠더 문제가 중요한 것은 알지만 일단 민주화부터”라는 식의 논리가 남북 교류가 활발하던 2000년대 중반까지도 되풀이되었다. 결국 한반도 통일·평화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연구하는 여성들이 점차 줄어들었고, 결국 지금과 같은 젠더 재현의 비대칭성이 도드라지고 말았다. 분명 분단이나 전쟁은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 무엇보다 가장 큰 영향을 받았고 받을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입장이나 경험이 고려되어야 함에도 여전히 남성으로 대변되는 국가 중심적인 사고가 주류인 까닭이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학계를 비롯한 공공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이 대부분인 탈북민 사회에서도 여성들의 목소리는 극히 제한되어 있거나 특정한 역할로만 발화된다. 주지하듯 2024년 6월을 기준으로 남한으로 이주한 북한 출신자의 수는 3만4183명인데, 이 중에서 여성 비율은 무려 72.1%에 이른다. 북한의 시장화 이후 장마당 활동에 나선 여성들의 이동성이 증가한 것과 동북아시아를 가로지르는 글로벌 돌봄의 이주 사슬이 젠더화되어 있는 것 등의 요인이 얽혀 탈북민 사회에서 여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들의 이주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실적인 정착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젠더적 접근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탈북민을 대변하는 공적 영역이나 위치에는 대부분 탈북 남성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까지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4명은 모두 남성이었고,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 탈북민의 상징성을 강조하며 정부 고위 관료로 임명된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는 탈북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고위 관료가 탈북민의 정착이나 시민성 고양 등을 위해 공적 영역에 진출한 것이 아니라 북한을 향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기 위한 분단적 장치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뜻한다.





각양각색의 경험 이야기돼야





물론 탈북 여성들도 종종 공적 영역에 초대받곤 한다. 주로 자신들이 경험한 끔찍한 고통이나 폭력을 증언하는 자리이다. 얼마나 더 끔찍한지를 경쟁이라도 하듯 가능하면 더욱 선정적이고 고통스럽게 증언해야 다시금 발언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탈북의 역사가 20년이 훌쩍 넘어가면서 다양한 탈북 여성들의 경험과 삶이 존재하는데도, 여전히 한국 사회가 이들에게 허용한 자리는 인신매매와 국가 폭력의 피해자라는 역할뿐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의 전략과 행위성을 구축한 처절하면서도 때로는 모순적인 경험들을 드러내기라도 하면 남한 사회는 혼란스러워한다. 더 나아가 그들이 자신들은 ‘피해자’가 아님을 선언하는 순간 그들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활용 가치를 잃게 된다.



극단적인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상당수의 탈북 여성들은 한국 사회가 호명하는 ‘피해자’라는 위치에 머물기로 결정하기도 하고, 소수의 몇몇은 ‘탈북’이라는 이름이 제한하는 역할을 벗어던지고 각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만큼 각양각색의 경험들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그들의 더 많은 이야기들이 발화될 때 비로소 한걸음 더 탈북민의 다층적인 삶에 다가갈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독재자, 체제, 정치 이데올로기, 핵과 미사일로 지워져버린 그곳의 사람들의 얼굴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영국 대사의 지적이 만들어낸 파장은 작지 않았다. 새롭게 섭외된 6명의 여성 패널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섭외된 여성 연사 중에는 탈북민 출신 여성 연구자들도 있었다. 우연한 사건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냈다. 여성 동료들과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을 많은 이들이 절감했을 것이다. 크룩스 영국 대사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한다.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영국 에식스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공회대, 싱가포르국립대를 거쳐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북한 사회와 탈분단 문화를 연구하며, ‘갈라진 마음들’ 등 다수의 학술 논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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